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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웅명의 문화기행 /몽골단상 12 - 4 ] -100개의 보석, 에르데네 조 사원-

Eco-Times | 기사입력 2023/11/14 [08:00]

[금웅명의 문화기행 /몽골단상 12 - 4 ] -100개의 보석, 에르데네 조 사원-

Eco-Times | 입력 : 2023/11/14 [08:00]

 

 

▲ 사원 입구, 라마승들이 경내로 들어가고 있다

 

차로 잠깐을 달려 에르데네 조(Erdene Zuu)사원 남쪽 정문에 도착한다. 여행 가이드 책에서 봤던 대로 사원을 둘러싼 108개의 흰 불탑(소브룩)이 눈길을 끈다. 사원 앞은 기념품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관광 피크 철이 아니라 방문객이 별로 없다.

 

16세기 알타이 칸이 건설한 이 티베트 불교 사원은 몽골 최초의 수도원으로 성벽 안에 많은 사찰 건물과 게르, 천여 명의 승려가 거주한 곳이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사원 건물이 서, 너 채 있고 특이한 양식의 흰 불탑, 그리고 번성했던 큼직한 게르 터가 남아 있다.

 

이 터 둘레의 크고 둥근 초석을 보니 당시의 게르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수백 명이 들어감 직한 게르 터이다. 몽골군에 의해 불타버린 경주 황룡사 터의 심초석과는 비교가 안 되게 작지만,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 해도 다행스럽다.

 

▲ 티베트 불교 사원 벽화, 자나바자르(Zanabazar) 미술관 소장

 

▲ 바이로자나 불, 17세기 라마승 자나바자르의 작품으로 울란바타르 자나바자르(Zanabazar) 미술관 소장

 

▲ 고대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북인도, 아프가니스탄지역 원정으로 이 지역의 조각은 현실성과 섬세함을 곁들인 헬레니즘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몽골 불상도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처럼 티베트를 거쳐온 까닭에 서구인의 얼굴을 닮았다.

 

▲ 대형 철솥 너머 일찍 입장한 방문객이 사원 경내를 거닐고 있다.

 

▲ 라마승들의 음식을 만들던 대형 철솥, 문양이 만물 창조와 생명력의 의미를 지닌 연꽃이다

 

▲ 에르데네조 사원의 불탑(소브룩), 사원 사방 둘레에 108개가 서 있다.

 

▲ 사원 경내의 라마승

 

남아 있는 사채 안은 아직도 스님들이 기거하며 예불을 드리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일부 라마승은 사채 안에 앉아 예불을 드리고, 일부는 사채 밖에서 불경을 보고 얘기도 나누면서 안과 밖을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다. 우리네 경건한 분위기의 사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방문객들은 사채 건물 사방에 잔뜩 설치된 마니차를 부지런히 돌리기도 한다. 무슨 염원이 많길래 지지대 아래위로 온통 마니차 천지이다. 많은 마니차 수만큼 이곳을 찾는 몽골인들의 기원이 갖가지인 까닭인가.

 

몽골의 티베트 라마 불교는 국민종교와 같다. 이에 전통적인 샤머니즘도 생활 속에 스며 있다. 티베트어로 쓰인 불교 경전이 울란바타르 간단(Gandan) 사원에 소장돼 있어 연구자들이 몽골을 찾는다고 한다.

 

몽골 제국이 티베트를 복속한 1240년 이후, 1257년 뭉케 칸은 카시미르 출신 티베트 승려를 하르호린(카라코룸)으로 초치해 국사로 임명하는 한편, 티베트로 불심 가득한 보시를 했다. 이는 아마 선대 징기스칸 시대부터 정복전쟁을 나갈 때 옆에 둔 샤먼(shaman)에게 전투 시작의 길일을 점지받았었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닐까.

 

▲ 마니차

 

▲ 에르데네조 사원의 라마승

 

▲ 사원 안 큰 게르(Gher) 터의 초석

 

그리고 사원 경계벽 안 휑한 공간에 석상, 석비, 돌절구, 철솥 등 여러 가지의 유물들이 몇 군데 놓여 있다. 자세한 안내문이 있으면 좋으련만 설명이 부족하다.

 

▲ 사원을 지키던 석상, 세월만큼 석상의 디테일이 무디어진 것인가.



1937년 스탈린의 탄압으로 많은 라마 승들이 죽임을 당하고 몽골인의 정신적인 가르침과 깨달음의 현장인 이 사원도 철저히 파괴를 당했다. 몽골인민공화국의 최고사령관인 초이발산(Choibalsan, 1895 - 1952)이 이 일에 앞장섰다.

 

그래서 오늘날도 수상을 역임한 그에 대한 평가가 유보되고 있는 것 같다. 1930년대 불교 성직자, 지식인, 정치적 반체제 인사, 부리야트족, 카자흐족, 3만여 몽골인들이 ‘혁명의 적’으로 간주돼 숙청되었다. 그는 1952년 생을 마칠 때까지 ‘몽골의 스탈린’으로 불리기도 했다.

 

▲ 카자흐스탄 시장의 고려인 후손 부부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인 가족들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될 때 이곳 몽골 상황도 마찬가지로 소련의 억압이 따랐다. 당시 몽골 현대사는 소련과 정치적으로 연대는 강했으나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 남고비로 향하는 도중 만달고비(Mandal Gobi) 마을 버스 정류장의 몽골 여행객들

 

1990년대 초 공산주의가 물러가고 종교의 자유가 다시 주어지면서 사원의 본래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500년 전 당시로의 완벽한 복원은 어렵겠지만 아직도 많은 손길이 필요한 것 같다. 108개의 주변을 둘러싼 흰 불탑 외에는 성벽 안의 건물 복원과 유물의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

 

500여 년 전, 사원 안에는 100여 채의 건물과 천여 라마승이 구도, 정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개인보다 중생을 중심으로 위하는 대승불교의 성격을 지닌 티베트 불교는 처음 밀교 형태로 비밀스런 가르침으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5세기경 불교가 티베트에 소개되고 7세기 송첸 감포 왕 때 본격적으로 티베트로 전해졌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몽골에서도 교학, 수행을 추구하는 라마 불교의 구도 행태가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본원적으로 불안(die Angst)을 느끼는 존재이다.

 

내가 사인샨드(Sainshand)로 기차여행을 가서 어슴프레 만난, 동고비 사막 바위굴에서 수행한 천재 라마승 *단잔라브자(Danzanravza, 1803 - 1856)의 족적, 그리고 징기스칸 후손으로 티베트를 다녀온 예술적 감성을 지닌 라마승인 자나바자르(Zanabazar, 1635 - 1723)가 빚어낸 불상 작품들이 인상 깊게 뇌리에 남아 있다. 몽골의 티베트 불교에 정진한 라마승의 지고한 정신세계와 이를 표현한 몇몇 걸작은 찬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Eco-Times 2023. 3. 13일자

‘금웅명의 동몽골 사막기행 3편’에 자세히 소개돼 있음.)

 

 

▲ 에르데네 조 사원 안 풍경, 시월 하순 일요일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준 첼맥(Chelmek)과 필자, 사원 안 박물관 앞

 

본래의 번성했던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퇴락한 벽돌 건물과 조잡한 페인트칠로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은 아닐 진데. 다만 시월 하순 휴일을 맞는 이곳 사원 성벽 안의 공기만이 쏴 하고 차갑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한 건물의 문이 닫혀 있다. ‘백 개의 보석’을 뜻하는 에르데네 조 사원의 속살을 옛 모습대로 못 본 것 같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행은 이곳을 떠난다.

 

# 몽골단상 12 – 5 편은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Times 금웅명 고문producerkum@daum.net

[MNB (몽골 국영방송국) 방송 자문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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