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음력 4월 6일 (양력 5월29일) 봄날 오후,
남양부사 신철구는 급박한 보고를 받았다. 남양도호부 관할 해역인 제부도 앞 먼 해상 입파도 부근에 커다랗고 시커먼 이양선이 5척이나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신철구는 지난해 섣달에 남양부사(1870.12.24~1871.5.1 재임)에 부임했다.
부임 3달이 지나 이제 어느정도 민정을 파악하고 있는 마당에 민감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5년전인 1866년 조선은 강화도를 공격한 프랑스 함대와 격전을 치뤘고(병인양요)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미국선박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조정은 이양선의 출현과 동태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양부사 신철구는 지체없이 경기감사(당시 경기감영은 한성 돈의문 밖에 있었음) 박영보에게 이 사실을 보고 했다. 경기감사 박영보는 득달같이 남양도호부( 화성시 남양에 위치)로 달려왔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입파도 부근 해역에서 정박해 있었을까?
[美아시아함대는 기선 콜로라도호를 비롯해 알라스카,베네시아, 팔로스, 모노카시 등 5척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다]
다음은 고종실록 8권 고종8년 4월9일 (음력) 경기감사 박영보의 장계(壯啓)내용이다 ‘오늘 사시(巳時)에 조수(潮水)를 이용하여 남양부사(南陽府使) 신철구. 화량 첨사(花梁僉使)와 같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으나, 양선(洋船)이 있는 곳까지 채 가기도 전에 어제처럼 사나운 바람이 불어 할 수 없이 (제부도 로 )돌아와 정박하였습니다.
양선의 종선(從船) 3척(隻)이 바람을 무릅쓰고 와서 정박하므로 급히 가서 보니 서양사람 3명(名)이 뛰어내렸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얼굴 생김새나 말씨가 틀림없이 우리나라 사람(중국인 통역으로 추정)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며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하고 글로 써서 물었더니, 그들은 "글을 모르므로 글로 대답할 수 없다."라고 하고는 한 통의 편지를 주고 이어, "혹 중국말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라고 물으므로 없다고 대답하니, 그들은, "장사하러 여기에 왔으니 사람을 죽이는 사단은 전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배는 몇 척이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5척이다."라고 말하였으며, 또, "어느 날에 돌아가느냐?"고 물으니, 그는, "며칠 내에 북쪽으로 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돼지, 닭, 계란, 물고기를 살 수 있느냐?"라고 하기에,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또다시 물으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뿌리치고 배를 돌려 가버렸습니다.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잠시 살펴보니, 3척의 배에 있는 서양사람들은 47명이었습니다.
저 무리들이 바닷가를 거침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걱정되어 방어대책에 대하여 특별히 신칙(단단히 타일러 경계함)하고, 그들이 보낸 편지 한 통을 베껴서 올려 보냅니다.’라고 아뢰었다
다음은 미국원정대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이다 "회답을 올립니다. 어제 대면에서 가져온 편지를 받아보니 우리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여기에 온 것은 무슨일 때문이냐 고 하였고 여기로 온 경위를 알아 보았으면 좋겠다 등의 내용이었는데 이미 이 문제들은 우리 흠차대인(欽差大人.로우 Low /주청 미국공사.원정대의 조선파견 전권공사) 제독대인 ( 로저스 /미국 아시아함대 사령관 )에게 편지로 알렸고 회답을 해주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조선원정 대임을 부여받은 '로우'와 '로저스'에게 허락을 받고 이 편지를 전달한다는 얘기다. 이어서 자신들의 정체와 이곳에 온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배는 대아메리카합중국(大亞美理駕合衆國) 즉, 대미국(大美國)의 배이며 여기에 온 것은 우리 흠차대인(로우)이 조선의 높은 관리와 협상할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약을 체결하려면 아직도 날짜가 필요하므로 우리 배는 이 바다 어느 한 지역에서 정박하고 있으면서 조약이 체결되기를 기다렸다가 돌아가겠습니다. 배에 머물러 있는 두 대인은 다 잘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조정은 대책을 논의하고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통역관을 파견하기로 했다.
[취재팀/ (좌) 금웅명 고문 .(우) 박래양 기자]
2024년 5월24일, 취재팀은 153년 전 미국 아시아원정함대가 잠시 머물렀던 해역에서 가까운 입파도를 찾았다. 입파도에 상륙했을지도 모를 그들의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찾아보기 위해서다.
입파도는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에 속하는 섬이다 . 파도가 일어선다고 해서 입파도란 이름이 붙었다.겨울이 되면 강한 북서풍을 그대로 맞는 섬이다 .서신면 궁평항에서 서쪽 해상 12.4km에 위치한다. 취재팀은 궁평항에서 서해도선 배에 승선했다.
뱃길은 먼저 국화도를 거쳐 입파도로 들어가는 항로다. 궁평항에서 국화도, 입파도를 왕래하는 서해도선은 화성시와 경기도의 지원금으로 '23년에 건조된 여객선이다 . 배는 비교적 깨끗하고 안전해 보인다.국화도까지는 40분 입파도는 1시간이 걸린다. 20여명의 승객들이 함께 승선했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나들이객과 낚시꾼들이 많다.
5월의 서해바다는 잔잔하다. 경기만 일대 바다는 육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망망대해의 분위기가 된다. 주변에 섬들이 거의 없어서다.
美아시아원정 함대도 일본 나가사키를 출발해 경기만 해역으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마주친 섬이 국화도 .입파도 또는 풍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배는 궁평항을 출발해 정확히 40분 후에 국화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국화도에 내렸다. 국화도 출발 20분 후 입파도 선착장이 보인다.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서면서 입파도의 전경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국화도의 부속섬인 입파도는 오히려 국화도 보다 크고 수목이 우거져 있어 보였다.
선착장 부근에 민박집이 2~3채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일렬로 들어서 있다. 바로 뒤에는 울창한 수목으로 덮힌 50m 정도 높이의 산봉우리가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정도 높이의 산봉우리는 먼 바다에서도 쉽게 눈에 띌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들 원정대의 로저스 사령관은 5년 전인 1866년 병인년에 강화도로 상륙한 프랑스 극동함대가 만든 지도를 들고 있었는데 프랑스 함대는 입파도를 '외제니'라는 지명으로 표기 하고 있었다.
오랜 항해 끝에 이들은 이곳 입파도에 잠시 상륙하지 않았을까... 먹을것도 구하고 식수도 보충해야 하고 ...
당시 이들은 제부도에서 조선관리들과 조우하는 자리에서 필담으로 먹을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입파도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마실 수 있는 물이 비교적 풍부하다.
이 섬에서 40년 동안 살고있는 김석종 (민박집 운영) 씨는 이 섬에는 한 때 작은 폭포수가 흘러내렸고 벼농사도 지었다는 말로 민물의 풍부함을 얘기하고 있다. 요즘은 집집마다 커다란 물탱크를 설치하고 산아래 계곡에 있는 우물에서 펌프로 물을 퍼올려 생활용수로 쓰고 있다. 기자도 물을 마셔보니 짠기가 있을거란 예상과는 달리 물맛이 담백했다. 인근에 위치한 국화도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바닷물을 정수해 쓰는 실정이다.
美아시아원정대는 1871년 5월 하순경 이곳 입파도 주변 해역에 며칠 동안 머무르면서 강화해협으로 들어가는 수로를 측정하고 조선군의 동향을 파악했다고 원정함대의 로저스 사령관이 조선원정 보고서에 기록하고 있다.
오랜 항해 끝에 이들은 제부도에서 먹거리를 구하려 하고 이곳 입파도에 상륙해 먹을 물을 보충하지 않았을까 ...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합리적 추정이 가능한 부분이다.
입파도는 화성시 제부도, 백미리 해안 등과 함께 전국에서 16번째 화성 국가지질공원으로 지난 2월 29일 지정 고시됐다.
국가지질공원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질유산을 보전하는 동시에 이를 교육·관광 사업 등에 활용해 지역의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자 환경부 장관이 인증하는 대안적 개념의 공원제도이다. 화성 국가지질공원은 전 지질시대에 걸친 다양한 암석이 분포하고 있고 동아시아 지각의 지체구조 연구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입파도는 근세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입파도는 현재 산림청 관할 국유지이다. 현재 이 섬에는 12가구 2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 하고 있다.이들은 관광객과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민박집을 하거나 섬 주변 바다에 풍부한 물고기, 낙지. 소라 등을 채취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섬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은 섬의 산림보호를 위해 산림청과의 40년 계약으로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해당 계약도 25년 3월에 만기가 된다. 섬의 이곳 저곳에 산재해 있는 민박집과 시설물들은 대부분 불법 건축물들이다. 화성시의 행정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화성시의 소중한 지질자원 가치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국가지질공원 브랜드를 활용한 사업을 추진해 지속가능한 지역 관광 활성화에 힘쓰겠다”고 국가지질공원 인증 시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근세 역사의 흔적과 소중한 지질자원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입파도 , 입파도는 지금 그 가치를 실현 할 수 있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기획: 금웅명 고문 -취재 :박래양 기자 lypark97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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