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은 ‘가면’이라는 뜻이 ‘페르소나’라는 용어로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의 설명대로라면,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그리고 ‘자식으로서의 나’는 모두가 똑같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때와 대상, 또는 상황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즉, 현재 자신의 역할에 적절한 페르소나를 써야만 하는 것이죠. 어쩌면 나의 신분과 직위, 또는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persona)를 적절히 골라서 사용하는 것이 ‘지혜’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가면’을 ‘화장’이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깨끗이 씻고 화장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깨끗해야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단정한 내 모습이 잠시 후에 만날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어떤 사람은 화장한 모습이 곱게 보이지만 어떤 사람은 왠지 추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민낯’의 건강성 때문일 겁니다. 민낯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화장을 한다고 해도 곱게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얼굴 피부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같습니다. 삶에서의 민낯이란 ‘인격’을 뜻합니다. 인격이 잘 갖춰져야 신뢰와 존경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좋은 예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처음 임명한 재무장관이 무척 교만했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장관이 된 후에도 그는 대통령인 링컨을 무능하다고 말하고 다녔고, 링컨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다고 해요. 하물며 자신이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과 맞붙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링컨의 참모들은 당연히 그를 경질시키라고 했지요. 그때 링컨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며 참모들의 분노를 진정시켰다고 합니다.
“내가 젊었을 때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어요. 말에 쟁기를 씌워 밭을 가는데, 평소 게을렀던 말이 그날따라 얼마나 열심히 달리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말 등 위에 말파리 한 마리가 붙어 있는 걸 보았소. 그래서 무심코 말파리를 쫓았어요. 그런데 농부가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소? 농부의 말씀은 그 말파리가 말 등을 깨물고 있으니까 말이 열심히 달렸다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이 재무장관을 경질시키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라요. 그가 ‘대통령 병’이란 말파리 덕분에 국민을 위해 더 열심히 달릴 수 있도록 그냥 그 자리에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참 인격의 그릇이 대단히 큰 정치인입니다. 정치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속마음이 ‘민낯’이라면, 정치인으로서의 겉모습은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민낯은 바로 국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일 겁니다. 이렇게 민낯이 건강한 링컨이니까 자신의 정적마저 끌어안는 도량을 갖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노예해방이라는 역사적 쾌거를 이룰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 사회에도 ‘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민낯이 건강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화장으로 인해 더 아름다워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들이 내미는 따뜻한 손길과 미소가 세상을 지금보다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비난조차도 웃으며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는 더욱 희망이 드리워진 밝은 세상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Eco-Times 최원영 전문위원 (인하대학교 프런티어 학부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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