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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의 ‘노래로 읽는 사자성어 이야기- 척과만거(擲果滿車)-

Eco-Times | 기사입력 2023/03/09 [19:51]

고재경의 ‘노래로 읽는 사자성어 이야기- 척과만거(擲果滿車)-

Eco-Times | 입력 : 2023/03/09 [19:51]

 

 



                                                             

 

 

척과만거(擲果滿車)는 던진 과일이 수레에 가득 참을 의미한다. 진나라 시절에 최고 훈남 반안(潘安)이 외출할 때마다 젊은 여성들이 넋이 나간 채 자신들에게 그의 얼굴을 돌리게 하여 마음을 얻으려고 과일을 던져서 수레에 가득 찼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척과만거는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함을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다비치가 부른 ‘고백’ (작사·유성규 작곡·윤민수 원곡·포맨)은 전형적인 척과만거의 노랫말로 구성되어 있다. ‘고백’의 화자는 여성 인물로 등장한다. 가사 도입부에서 그녀는 셀 수 없는 ‘고민’과 왠지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음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남성 연인이 자신의 곁을 ‘떠날까봐’ 극도로 초조해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의 연인이 자신을 철저히 ‘외면’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걱정하고 있다. 또한 연인이 그녀에게 심리적 ‘부담’을 가질 것 같아서 그녀는 두려운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그녀는 연인으로부터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이별을 자신에게 통보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노심초사 한다: ‘Don’t say good bye’.

 

연인과의 관계가 그다지 녹록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당히 용기를 내어 연인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난 네게 부족하지만/참 많이 부족하지만/세상을 다 뒤져도/나 같은 여잔 없다는 걸 아니’. 그녀는 서서히 스스로를 위로한다. 또한 점차 연인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절실한 호소를 토대로 자신과 상응할만한 여자를 아무리 전부 찾아보아도 이 세상에는 부재하다며 연인에게 과감히 고백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훗날에는 여성 화자인 자신을 연인이 ‘바라보면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 피어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확신한다. 사실 화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연인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기 까지는 가슴 쓰라린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였다고 그녀 스스로 밝힌다. 여성으로서 연인에게 고백이라는 형태로 ‘이런 말 하기 까지’ 참으며 지내기가 힘들고 주저하였을 것이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인 프랭크 딕시가 그린 명화 ‘고백’에서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그림에서 여성의 고백이 자신의 손에서 선택이 종료되었음을 시사한다. ‘고백’ 노랫말에서 그녀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연인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그녀는 몹시 궁금해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의 고백이 연인으로부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예측불허의 상황이 발생하면 이때 느끼는 자괴감과 민망함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바보 같은 모습’의 자신일지라도 그녀는 연인에게 본격적으로 사랑 고백의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화자가 생각하는 세상의 여성들은 각자의 연인에게 ‘세월이 흘러도/난 변하지 않겠다고/너의 작은 실수라도/따뜻하게 안아주겠다고/’ 거창하게 말하는 여성들로 비쳐진다. 하지만 화자가 생각하는 연인에 대한 정의는 눈 뜨면 바로 볼 수 있고 ‘눈 감아도/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내 사랑’이다.

 

바꿔 말하면 말로만 화려한 사랑을 부르짖는 여성보다는 연인의 곁에서 서로의 사랑을 깊이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인에게 진실된 사랑을 고백하는 여성이 되고 싶어 한다. 마침내 그녀는 이렇게 고백 청혼 한다:

 

‘나와 결혼해줘요’. 자신이 ‘조금은 어색하지만/많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진심어린 고백과 청혼은 꾸밈과 가식이 절대 아니다. 이것은 참으로 승화시킨 절대 진실의 숭고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척과만거는 용모만 수려한 남성에게 여성이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남성은 여성이 흠모할 만한 해를 품은 인성을 겸비한 훈남으로 인식해도 무방하다.

 

여권 신장과 양성 평등의 시대적 사조와 맞물려 척과만거의 풍조가 갈수록 일반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누가 사랑 고백을 먼저 하느냐의 사안이 아니다. 사랑 고백을 누가 먼저 하든지 그 프로포즈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진심이 소통되면 사랑하는 남녀 연인의 삶의 미래가 오래도록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Eco-Times 고재경 전문위원 (배화여대 명예교수/영문학 박사/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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