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0m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를 현대판 공중도시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대의 공중도시는 며칠 전에 다녀온 페루의 마츄픽추겠지? 마추픽추가 2,430m이니 볼리비아 라파스가 형님 되시겠다. ㅋㅋㅋ
페루에서의 강행군으로 피곤해진 몸을 추스리기 위해 이곳 라파스에서 2일을 쉬었다. 가난한 배냥이 (배낭 하나 둘러메고 승냥이가 먹이를 찾듯이 세계의 멎진 곳을 찾아 떠도는 나 같은 놈에 대한 나만의 표현)들이 가기 힘든 호텔 뷔페에서 그것도 2번씩이나 소화제 먹을 정도로 원기 보충을 하고 나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우유니는 라파스로부터 서남쪽으로 약500km 떨어진 해발 3,660m에 위치해 있다. 주민이 만명 정도 되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일년 내내 전 세계의 소금 투어 관광객들이 모여 들고 있다. 라파스에서 비행기로는 한시간, 버스로는 대충 9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밤에 떠나는 우등버스를 타기로 했다.
( 우유니행 우등버스 )
버스는 저녁 9시 출발이지만 좋은 좌석을 차지하려 일찍 왔는데 아직 티켓팅을 안하고 있다. 나의 난감한 표정을 읽었는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조금만 기다리면 버스 티켓을 살 수 있다고 한다. “Gracias” “you’re welcome”
( 라파스 종합터미날 내부 모습)
( 라파스 종합터미날 입구 )
멋쩍게 기다리며 서로에게는 제2 외국어인 영어로 서로의 호구 조사를 하다 보니 우유니에서 라파스로 유학 온 원주민 치피아족이란다. 자기 마을에 대한 자랑을 늘어 놓는데 영어로는 설명이 제대로 안되어 답답한 모양이다. 급기야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섞어 신나게 수다를 떤다. 차츰 피곤해 진다. 얼른 창구가 열리기만 바랄 뿐이다.
‘괜히 말 붙여서 찌질이 된통 고생하고 있네 쌤통.’
“좌석은 1층 뒤쪽 일인석으로...” (우등은 한 줄이 2인석과 1인석으로 배열되어 있고 의자가 거의 180도 제쳐져 침대처럼 편하다.) 경험에 의해 이 자리가 비행기로 치면 일등석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2층칸을 타봤는데 차가 커브를 틀 때 졸다보면 의자 밖으로 (2010년에는 안전벨트를하지 않았음) 튕겨 떨어지던지 옆사람과 急밀착접촉을 해서 무안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한 화장실이 1층 앞쪽에 있어 그 근처 잘못 앉으면 버스를 타고가는 내내 ‘쉑 쉑’ 전투기가 내는 소음 같은것으로 밤새 고생을 해야 한다. 그나마 냄새는 나지 않아 다행이지만. . . .
라파스만 벗어나면 대부분 비포장 도로다. 우기 때는 도로가 유실되어 몇 시간씩 지연된다고 한다. 때마침 요즘이 우기다.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잔다. ‘모든게 잘 될거야. 아멘!’
깜깜한 밤이라 창밖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버스의 율동 모션이 커진 것을 보니 라파스에서 제법 먼 곳을 달리고 있나 보다. 이런 약간의 움직임이 아기의 요람 같아서 잠을 쉽게 깊게 잘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찌질아. 그러면 니는 아직 베베여? ㅎㅎㅎ’
이제 밤새 버스로 이동을 하면서 버스숙박도 하는 절약 배냥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호텔비가 세이브된다. 쭝(中)늙은이가 할 짓거리는 아닌 것 같긴 한데...
비몽사몽하다 보니 버스 실내등이 켜진다. 불을 켰다는 것은 내리라는 신호 아녀? 밖은 컴컴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모두가 얼굴을 비비며 엉클어진 머리를 추스리느라 바쁘다. 뭐여, 5시도 안되었는데 우유니에 도착했다고 ?.
요즘에는 버스기사 두 명이 교대로 밤샘 non stop으로 운전해서 고지된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한단다. 버스에서 내리니 제법 쌀쌀하다.
근처 식당과 카페는 새벽부터 영업하는 곳이 없어 하차한 여행객 모두가 난감해 하는데 우유니 청년이 새벽에 문 여는 카페를 안내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뒷골목에 제법 큰 식당 겸 카페가 영업을 한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니 몸의 한기가 풀리며 갑자기 피곤이 밀려온다.
( 도로의 가운데에 기차 조형물이 세워져 중앙선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덧 먼동이 터오면서 어둠에 모습을 감추었던 마을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동네를 돌다보니 귀여운 기차모형, 기차수리공 동상 등 제법 멋진 기차 조형물들이 도로 가운데 쭉 전시되어 중앙선을 대신하고 있다.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는 당일치기 부터 일주일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나의 일정은 사막에 있는 호텔에서 2박하고 아따까마사막 국경을 통해 칠레로 넘어가는 2박3일 여정이다. 내가 타고 갈 차는 도요다 랜드쿠루져다. 그런데 그 차의 상태가 2차 대전에 일본군이 타고 다녔던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낡았다. 이게 제대로 굴러갈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 필자가 타고 다닌 자동차 )
이번 여행에는 3대의 SUV차에 운전기사, 요리사(우리 차 운전기사 파블로의 부인) 포함해 14명이 3일 동안 동고동락을 하게 된다. 운전사가 짐을 차 지붕 위에 실으면서 저녁 때나 짐을 찾을 수 있으니 지갑, 카메라 등 몸에 지닐 것들은 분리하라고 시간을 준다.
연장자 우대로 운전석 옆자리를 차지하고 첫번째 방문지인 <기차 무덤 (cemeterio de tren)>으로 출발한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흙먼지로 앞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창문을 열생각도 못하는데 여러 명이 내뿜는 체온으로 차내 공기는 금방 습하고 더워진다. 게다가 새벽녘에 입은 방한용 겉옷 때문에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흐른다. ‘아~~ 찝찝해.’
에어컨을 키자고 하니 고장 났다면서 <기차 무덤>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조금만 참으라고 한다. 특별히 사진을 찍을 것도 없지만 있다해도 달리는 차들이 일으키는 먼지로 시야가 좋지 않아 카메라는 개점 휴업이다.
그런데 왜 차를 그리 가까이 붙어서 운전을 하지? ‘앞차에 요리사로 탑승한 여보야가 보고파서 였을까?’ 연장자라고 앞에 탈 때까지는 좋았는데 나처럼 소심한 놈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앞차와 곧 부딪칠 듯한 간격에 속도까지. . . 심장이 쫄깃하다.
‘지 아주 먼데서 왔고요. 앞으로 한달 넘게 너희 이웃 나라들도 댕겨야 하는디. Slow slow please ‘ 뿌연 흙먼지 사이로도 저 멀리 지평선 끝자락에 만년설이 쌓인 산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 고철 덩어리 폐열차들과 필자 )
찝찝함이 한계에 다다를 즈음에 멀리 거뭇거뭇한 흉물스런 고철덩어리가 보이고 그 앞에 여러 대의 짚차들이 도열해 있다. 흙먼지를 먹으며 차에서 내리니 앙상한 뼈대만 남은 여러 대의 열차들이 두 개의 기차 레일 위에 제멋대로 버려져 있다. <기차 무덤> ‘누가 이름 한번 기똥차게 잘 지었다. 아주 어울려.’
우유니에 속해 있는 포토시 쎄로리꼬 광산은 텅스텐, 주석, 은 등의 주요 산지였다. 스페인이 볼리비아를 통치하던 시절 스페인 마드리드로 광물을 나르기 위해 1890년 철도를 개설했으나 1940년부터 광물자원이 고갈됨으로써 철도 이용가치가 없어지고 그대로 버려져 지금의 기차 무덤이 된 것이다.
우유니는 이때 생겨난 도시로 한 때 번성하였으나 지금은 소금사막이 유명해지자 전 세계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관광도시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우유니 주민들은 사막 한가운데 덩그라니 버려진 이곳 열차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녹이 슨 고철덩어리 열차들은 모두 한때 은.주석 같은 광물을 가득 가득 실어 나르던 황금열차였다. 그래서 일까 이 폐열차들이 관광자원화 되어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쯤되면 자원의 재활용 측면에서 엄청 성공한 케이스다.
여러 대의 지프차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여러 열차에 올라가거나 쭉 뻗은 레일 위에서 멋진 인생샷을 찍고 있다. 대부분의 기차는 몰골이 형편 없으나 그나마 형체가 이쁘게 남아 있는 기관차에는 관광객들이 순서대로 올라서 사진을 찍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이미 사진을 찍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데 열차에 올라 탄 젊은 몇몇 攘夷(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또 열 받아 이런 단어를 선택했다.)들이 독사진, 단체사진 그리고 몇 명 그룹으로 사진 찍으면서 완전 전세를 냈다. 여러 각도에서 폐열차의 멋진 구도를 잡으려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많이 지친다.
여행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 . . 이러면 앞으로 40일을 어찌 다니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3,400m 페루 쿠스코에서 고산병을 겪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곳은 그 보다 250m 이상 더 높은 곳임을 잠시 잊었나 보다. 시간 내에 많은 사진을 찍으러 뛰어다닌 후유증일게다. 기차무덤에서 주차된 차까지 걷기에도 숨이 턱턱 차는게 힘들다. ‘고산병이 아니라 혹시 열 받아 피가 꺼꾸로 돌아 그런 것 아녀? 쓰러지면 나만 손해인디. . . 忍 X 3 후우~~~’
주어진 30분간의 시간에 맞추어 간신히 도착해보니우리 차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고물 랜드크루져 그린칼라>만을 기억하였는데 옴메 주차한 차가 색깔에 관계없이 모두가 2차 대전 때 사용하였던(?) 차 같고 웬 그린칼라가 그리 많은지 . . . 어리버리하고 있는데 쉐프(운전기사의 아내)가 손짓을 한다.
니가 제일 먼저 왔다면서 엄지척을 하는데 당초에 주어진 30분보다 배로 늦어진 1시간후에 출발하는데 은근 화가 치민다. 가장 연장자인 나는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고산병으로 쓰러질 위험을 감수하며 뛰다시피 왔는데 늦게 온 일행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아주 순진한 표정으로 마냥 즐겁단다. ‘ 우띠 열받아! ‘ 게다가 운전기사 파블로는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일행들에게 재촉도 안한다. 그저 이탈리아에서 온 여대생 일행들과 신나게 수다만 떨고 있다. ‘저 시키 집사람 곁에 두고 . . . 완전 밉상인디.’
나중에 알고보니 파블로란 뜻은 ‘소심한, 겸손한’ 이란 뜻을 지닌 단어로 나는 파블로가 3일동안 단 한번도 화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쉐프인 그의 와이프 曰 “좋은 사람이기는 한데 답답해서 이혼해야겠다"면서 씩 웃는다.
‘우째 의미심장한 농담 같은데 나만의 느낌일까?’ ‘혹시 파블로는 지금쯤 새 장가 갔을까?’ 별 걱정을 다한다.
떠나기 전 멀리서 바라 본 기차 무덤을 보면서 ‘니들도 젊고 힘있을 때는 치장도 하고 멋쟁이였을 텐데 나이 먹고 쓸모가 없어지니 저렇게 초라하게 내버려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1m 짜리 줄자에서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남미에서 돌아갈 때 내 위치를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출발! 우유니 소금사막 가슴 깊숙한 곳으로. . . .
Eco-Times 한용성 :글.촬영 /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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