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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웅명의 문화기행/ 몽골단상 (2)] -앙카라 거리축제-:생태환경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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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웅명의 문화기행/ 몽골단상 (2)] -앙카라 거리축제-

Eco-Times | 기사입력 2023/06/12 [07:47]

[금웅명의 문화기행/ 몽골단상 (2)] -앙카라 거리축제-

Eco-Times | 입력 : 2023/06/12 [07:47]

 

 

 

▲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중심지   © Eco-Times

 

숙소 바로 가까이 있는 앙카라(Ankara) 거리가 휑하다. 토요일 아침 9시를 조금 넘은 시각인데 차량통행이 막히고 고요하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5번 학교 앞 소광장 벤치에 앉아있는 젊은이에게 왜 거리가 조용한지를 묻는다. 오늘 무슨 행사가 있길래 차가 다니지 않고 길 가장자리에 임시점포들이 들어서는지, 난 궁금했다. 그녀는 ‘아마 6월 1일이 어린이날이라, 행사를 앞당겨서 거리축제를 여는 것이리라’ 답한다.

 

몽골의 어린이날은 온가족이 동원돼 아이들을 축하해 주는 게 관습처럼 돼 있다. 이들이 어린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기념일을 철저히 챙기는데 난 놀라고 있던 참이었다.

 

▲ 소담스레 핀 가로의 흰 꽃나무, 6월 초가 돼야 꽃이 핀다  © Eco-Times

 

오전 10시 30분, 나는 다시 숙소를 나선다. 앙카라 거리 가로수 잎들이 제법 푸르고 길 건너편에는 흰 꽃들이 만발했다. 흰 꽃은 진한 페인트 색깔로 칠해진 건물들과 대조를 이루며 소담스럽게 어우러져 있어, 여름으로 가는 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있다. 몽골의 겨울은 대륙성기후로, 그 기간이 매우 긴 까닭에 요즈음이 봄과 여름의 길목인 셈이다.

 

모든 이들이 활기에 차 있는 것 같다. 도시 분위기도 외국여행객들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이때가 찬란한 여름을 예약하고 있어 1년 중 가장 좋은 시기임을 실감한다. 드넓은 초원에는 가축의 먹이가 되는 들풀들이 땅을 박차 오르며 자라고 있다.

 

블루몽(Blue Mon)빌딩 1층 갤러리에 들린다. 이곳에 갤러리가 있는데 나는 한 동안 이 장소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몽골 신화와 라마 불교 이야기를 그린 작품들을 면면이 살펴본 후, 기억으로 근처에 있는 나고미(Nagomi) 일식당을 떠올린다. 몽골은 내륙국이라, 이곳 사람들은 아직 생선회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일식당 음식 재료로 단순한 종류의 횟감이 한국에서 비행기로 냉동된 채 들어오고 있다고 들었다.

 

오전 11시 30분이라, 종업원들이 식당 개점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두 번째 손님이다. 요즘 치아가 시원찮은 나는 메뉴의 초밥 사진을 보고 주문한다. 그런데 연어가 초밥 재료의 전부인 듯, 그리고 다른 하나는 김밥에 잘게 썬 회 조각들이 얹혀져 있다. 나는 이것들과 미소 국을 시켜 먹는다.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대여섯 개의 초밥을 먹고 앙카라 거리로 향한다. 

 

식당 입구를 나서는데 맞은 편 퓨마호텔 건물 벽면의 퓨마 부조가 눈길을 끈다. 오후 1시 30분, 앙카라 거리에서 뭔가 행사가 벌어지고 있을 시간이다. 지나가는 북한대사관 앞 사진 게시판에는 젊은 북한 지도자의 사진이 부착돼 있다. 뉴스에서 늘상 보아온 모습이라, 흘낏 보고 지나친다.

 

▲ 퓨마 호텔 건물 벽면의 부조  © Eco-Times

 

▲ 앙카라 거리 터키 전통복장 남자의 조각상 분수대  © Eco-Times

 

앙카라 거리로 들어서는 초입에 전통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 터키인 조각상이 이 거리의 특징을 나타낸다. 울란바타르와 앙카라, 두 나라 수도 이름으로 미루어보아 자매결연이 있었음 직하다. 며칠 전 분수대를 손보더니 이제야 가는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시끌벅적 깃발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행렬을 맞추어 지나간다. 수흐바타르 구(區)를 상징하는 깃발 문양인가. 이 광경을 구경하던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 여행객들이 무슨 퍼레이드냐고 나에게 묻는다. 내가 그들이 보기에 몽골인처럼 보였으리라.

 

그리고 수흐바타르 구를 대표하는 주민들이 행진해오고 있다. 직업별로, 구역별로 행진하고 있다. 전통복장 델(Dell)을 입은 남녀의 행진이 화려하게 보인다. 델의 색상은 언제 봐도 울긋불긋 눈에 띠는 색깔들이다. 어린 꼬마들의 행진도 귀엽다. 유니폼을 입은 남녀 경찰 복장도 이제는 눈에 익다.

 

맨 앞줄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행진하는 여학생의 모습도 이채롭다. 가슴에 단 훈장 패션을 보는 것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이런 모습을 종종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아왔던 터이다. 이들은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의 상징조작 기념물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이들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것 같다.

 

수 십년 전의 상징 기념물이 아직도 몽골 사회에 남아 있다. 일부 나이든 노인들은 소련의 입김이 미치던 사회가 더 좋았다고 향수어린 말을 가끔 한다고 한다. 자유시장 경쟁체제가 그들은 힘겹게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기념장식물의 크기가 너무 커서 무겁게 보이기까지 한다.

 

유치원 꼬맹이들의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곱게 차려입은 옷과 아장아장 걷는 걸음걸이에 쓰고 있는 모자가 귀엽다. 내일을 꾸려갈 몽골의 주인공들이다.

 

▲ 유치원 아동들의 행진   © Eco-Times

 

▲ 상징 기념물인 훈장을 단 복장의 여성들  © Eco-Times

 

▲ 어린이날 행사, 칭기스칸 광장 2016. 6월 1일  © Eco-Times

 

▲ 2015. 6월 1일 어린이날 행사, 칭기스칸 광장  © Eco-Times

 

▲ 몽골 여인들의 앙카라 거리 행진, 2016. 5월  © Eco-Times

 

이들이 썰물처럼 지나가고 앙카라 거리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5번학교 앞 소광장에서는 예술대생들이 펼치는 터키무용이 오가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추는 젊은이들의 몸동작과 손짓, 발짓이 현란하다. 잠시도 정적인 순간이 없다. 허공을 향해 손짓으로 그림을 그리며 바닥 위로 발을 구르고 뛰는 동작이 계속된다.

 

투르크, 몽골의 전통춤은 유목민족의 전통대로인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몸동작이 많다. 그리고 공연자는 어깨를 들먹이든지, 손과 팔을 잠시도 쉬지 않고 웃는 표정을 짓는다. 이는 아마 넓다란 평원이나 초원 같은 넉넉한 공간조건이 마음껏 유희본능을 발휘하게 하는 배경이리라.

 

즐기면서 노는 것은 일정한 노동과 그 결과인 농작물이나 가축의 수확 후에, 자신의 감정을 이완시킨 채, 흥에 겨워 신체를 마음껏 움직이고 펴는 행위이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춤사위는 활력의 표현일 것이다. 가끔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다가, 어려운 텀블링 동작도 선보인다.

 

비트가 빠른 전통음악 선율과 함께 신명에 겨워하는 몸동작들에서 눈을 잠시도 뗄 수 없다. 춤사위가 음악 템포와 함께 빠르게 흐르는 것이 이들 춤의 특징이다. 춤에 빠져 있는 동안 어디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길래 돌아보니, UB 포럼의 정 교수가 날 보며 반가워한다. 그는 이곳을 지나다 들렸는데 거리축제의 배경을 얘기해 준다.

 

이 거리와 학교건물 건축이 터키정부로부터 지원된 지 25 주년이라 이 행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1996년에 두 나라가 수교한 간판이 피스애비뉴(Peace Avenue, 평화의 거리)의 터키대사관 정문에 붙어 있다. 아마 이즈음부터 두 도시의 자매결연이 맺어지면서 이러한 기념행사가 벌어지는 건 아닌지. 두 나라는 몽골고원이라는 대륙에서 시공간적으로 뿌리가 같고 친연성을 가진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춤추는 예술대생들의 복장은 화려한 색깔이다. 이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 희게 화장한 얼굴과 함께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하고 고운 빛을 발하고 있다. 구경하는 시민들은 젊은이들의 춤에 넋이 나간듯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푸른 가로수 아래에서 봄의 희망이 이들의 춤사위와 함께 가득 넘쳐 흐른다. '비바, 라스베가스'가 아니라, '비바, 앙카라 거리'이다.

 

이곳은 5번학교와 예술대학,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과학기술대학이 있기도 하려니와 문화의 거리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 공연자인 이곳 예술대학생들은 거리낌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관람객인 이곳 주민들은 휴일인 토요일의 넉넉함을 즐기고 있다. 모처럼 길거리 공연을 보며 하루를 즐기고 있다.

 

어쩌면 무용의 기원은 샤먼(shaman)의 몸짓처럼, 하늘의 신 텡그리(Tengri)와 함께 하면서 신에게로 더 가까이 가고자, 자신의 기원과 신명을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훠어이 훠어이, 잡신이여 물렀거라. 영험한 기운만이 내게로 오라.”

 

몽골은 5,000만 가축의 성장과 생산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넘치는 유목민의 나라이다. 가축은 싱싱한 목초를 먹고 목부는 일 년 내내 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원한다. 봄과 여름은 땀을 투자하고 풍요를 비는 계절이다. 

 

▲ 5번 학교 앞 소광장에 펼쳐진 예술대생들의 무용공연  © Eco-Times

 

▲ 예술대생들의 터키무용 공연  © Eco-Times

 

▲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이는 공연자들  © Eco-Times

 

난 언제부터인가 문화란 개념은 인간의 생활양식 전체를 말한다고 상식적으로만 이해했다. 최근에는 '인간이 창조하는 네트워크(man-created network)', 그 자체를 한 서구학자가 문화라고 정의한 것을 책(Media Literacy, James Potter 저)에서 보았다.

 

이 정의가 더 현실적이어서 내 뇌리에 깊이 박혀버렸다. 전적으로 수긍하는 개념규정이다. 문화라는 현상은 지역과 시간을 아우르면서 사람 사이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생겨나는 삶의 형태이고 현상이다. 이 접촉과 연결현상의 과정에는 인간의 창의성이 반드시 깔려 있다. 창조적인 의지를 수반한 창의성이다. 창조 의지가 대전제이다.

 

▲ 오스만 투르크(Ottoman Turkish Empire) 시대에 세운 터키 이스탄불의 모스크  © Eco-Times

 

▲ 칭기스칸 광장의 칭기스칸 좌상, 몽골과 울란바타르의 랜드마크이다  © Eco-Times

 

투르크와 몽골은 어떤 관계였나. 두 나라는 지금 지리적으로, 국경을 경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옛적에는 아시아대륙의 평원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시아대륙이 이들의 활동무대였다. 역사적 동인으로 인해 민족의 이동이 있었던 까닭에 서로 공간적 분리가 있었다. 서로 선린관계로 있던 두 민족이었다.

 

어떤 때는 갈등관계로 편치 못한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대 투르크 민족은 중앙아시아,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현재 터키 영토)로 퍼져 나갔고 800여년 전, 몽골 민족은 이 땅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역사를 이루어 왔다.

 

▲ 남고비의 유목민 가족  © Eco-Times

 

▲ 수흐바타르 거리의 모자  © Eco-Times

 

이런 까닭에 생활 문화공간으로서 광활한 이 땅은 두 민족이 화합한 경우, 이들의 유희 공간이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두 민족의 젊은 남녀가 뜻이 맞아 결합하는 경우, 초원 한 마당 큰 잔치가 벌어졌을 법도 하다.

 

유목민족으로서 이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으리라. 미래를 예정하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본원적 욕구이다. 어떤 경우에는 터키의 케말(Kemal)과 몽골의 나산(Nasan)이 만나 지금까지 후손을 이어 왔을 것이다.

 

Eco-Times 금웅명 고문producerkum@daum.net

[MNB (몽골 국영방송국) 방송 자문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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