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돈) 정면에서 본 십자군 해안 성채
“Mr. Ismail! Go Sidon directly. Slowly and safely please.” 시차 미적응 그리고 3월이지만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에 낮잠을 푹 자다 깨어보니 한가롭고 시골틱한 낯선 풍경이 나타난다.
시돈(옛이름 Saida)은 그리스어 ‘Sidonia’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수산업(fishery)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옛날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하여 지중해 지역에서 티레와 경쟁을 하던 해양도시국가다.
이곳은 이슬람 수니파가 주도권을 잡고 집단 거주하는 지역으로 얼마 전까지도 반이스라엘 헤즈볼라와 레바논 팔랑헤 민병대가 전투를 벌인 교전 지역이기도 하다.
해안가에 위치한 이슬람 전통시장 수크 (Souk)에 도착하니 멀지 않은 곳에 사진으로 봐서 익숙한 십자군 풍의 해안 성채(sea Citadel)가 아담한 돔천장을 머리에 이고 내게 웰컴 윙크를 한다.
성채로 가려면 바다를 가로지른 돌다리를 건너야 되는데 지금은 다리 좌우로 모래가 쌓여 바다를 건넌다는 느낌은 덜하다.
시돈) 해안 성채로 가는 길 / 퇴적된 모래가 쌓여 바닷길 건너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시돈) 해안 성채 입구에 있는 오래된 대포
다리 중앙에 다다르니 성채를 빼앗으려는 자와 방어하는 자들의 처절한 고함소리가 바람소리에 섞여 들리는 듯하다. 해안 성채에는 녹슨 대포 한자루가 입구를 가로 막으며 방문객에게 신고식을 받으려는 듯 놓여 있다.
성채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짜임새 있게 설계되고 탄탄하게 지어져 지금도 일부 건물과 벽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성채의 옥상과 성벽을 개방해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다.
특히 성벽에서 보는 돔 (dome)과 그 뒤로 보이는 시돈 신도시의 깔끔한 스카이라인이 오래되어 빛이 바랜 성채의 사진을 한층 멋지게 꾸며준다.
시돈) 성채 안쪽에서 본 해안 성채와 시돈 신도시의 스카이라인.
(시돈) 성벽 / 비블로스와 똑 같은 방식으로 벽을 쌓았다.
중세에 지어진 수크는 이슬람 전통에 따라 만들어진 미로가 엉겨 있어 관광객들은 자칫 길을 잃기 쉬운데 최근 여러 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화살표를 그려 놓아서 이동하는걸 쉽도록 했다.
길을 잃고 헤맬때는 벽에 그려진 화살표만 따라가다 보면 시장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안내에 신경을 쓸 정도로 골목길이 복잡하다.
시돈) 수크의 미로 / 복잡한 만큼 화살표와 이정표를 만들어서 길안내를 한다. (시돈) 수크를 소개한 지도와 곳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안내판에 설립 년도를 표기하는 재치가 돋보인다.
수크는 전통시장 답게 양고기, 각종 채소 등을 파는 식료품점들과 색조가 화려한 히잡, 청바지를 파는 패션의류점들이 이웃하여 레바논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수크의 미로를 다니다 보면 종종 벽돌을 낮게 쌓아 만든 굴(tunnel)을 볼 수가 있다. 이 터널은 적의 기병들이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릴 수 없도록 해 방어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고 한다.
(시돈) 수크의 굴 / 천장을 낮게 하여 기마병이 말에서 내리게해 진군 속도를 지체시켰다
시돈은 내륙으로부터 진귀한 물품을 들여와 '갈라선'(페니키아인들이 백향목으로 만든 이동성과 안정성이 뛰어난 배)으로 지중해를 누비며 해상무역을 하던 도시국가 였다.
상인들의 숙소인 칸 Khan El Franj에는 물품 보관소와 낙타와 대상들의 쉼터가 한 건물에 모여 있다. 효율성을 고려한 듯하다. 또한 칸은 물품의 상하역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수크 입구에 위치해 있다.
(시돈) 상인들의 쉼터 칸 / 1층 내부에는 창고 및 낙타우리 (사진 아래)가 있고 2층에는 대상들이 묵었다고 한다.
수크 끝자락에 있는 식물성 수제비누로 유명한 비누박물관 Soup Museum을 찾아가 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이란다. 아쉬운 마음에 박물관 근처의 비누 상점을 찿아보니 가게마다 온갖 화려한 색상의 비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단체관광객들은 식물성 비누라 좋다며 탐욕스러울 정도로 바구니에 한가득 담는다. 레바논 여행기념으로 뭔가 특별해 보이고 가성비가 좋아 선물용으로 제격일 것 같다.
전통시장을 둘러보니 이슬람 사원, 교회 심지어 카톨릭 성당까지도 적당한 간격을 두고 뒤섞여 있는 모습이 생경하게 와닿는다.
이곳은 주민의 80%가 수니파 이슬람교도 마을인데 여러 개의 교회와 성당이 이웃해 있어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레바논을 중립국인 스위스에 빗대어 ‘중동의 스위스’라고 부르는 것 같다.
(시돈) 전통시장
[레바논 나의 여행 루트 : 베이루트 – 비블로스 – 베이루트 - 시돈 – 티레 - 베이루트]
오늘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인 티레 (수르 Sour, 성경에서는 두로 Dooro)는 베이루트 도심에서 남으로 80km에 위치해 있다. 티레는 비블로스, 시돈과 더불어 페니키아의 3대 해양도시국가로 꼽힌다.
티레로 가는 길에는 여러 곳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어 시돈에 올 때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긴장감과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살짝 쫄보가 되었다. 검문소에서는 무장한 군인들이 탑승객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트렁크도 열어보고 몇몇 사람들을 차에서 내리게 하여 검문소 안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한국분이세요?” “네. 어제 도착해서 여행 중인데 왜 우리 군이 여기에?” “아~ 저희는 UN 평화유지군으로 파견 온 동명부대 소속입니다.”
티레) 검문소부터 호위해준 UN평화유지군 동명부대원 모습 (2015년 당시 사진)
찌질 쫄보가 되어 한껏 걱정을 하고 있던 내게 확실한 동무가 생겼다는 안도감에 다운되었던 몸 컨디션도 순간 회복이 된 것 같다. 군인들이 티레까지 동행해 주겠다고 한다. 사양하는 척하면서 ‘같이 가주면 나야 땡땡큐지.’하며 내심 바라는 내가 의뭉스럽다.
현대 산타페 차량에 유엔기와 태극기를 휘날리며 폼 나게 달리는데 이 친구들 최근 한국 소식이 궁금해서그런지 이것저것 쉴 틈도 주지 않고 교대로 질문 공세를 편다.
‘한국을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니 얼마나 궁금한 게 많겠어?’ 나도 이에 뒤질 세라 몇 명이나 파견되었냐? 언제 왔냐? 근무 기간이 얼마냐? 선발 기준이 뭐냐? 등등 숨도 안 쉬고 질문으로 맞대응하였다.
셋이서 왕수다를 떠는 동안 20여분이 후딱 지나 티레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티레) 열주 사이로 보이는 티레 구시가지.
티레는 고대 페니키아의 최대 해양도시국가로 페니키아왕의 딸이며 유럽을 탄생시킨 에우로파 Europa와 카르타고를 건국한 엘리사 Elissa여왕(디도 Dido라고도 불림)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또한 성경에서는 인신공양의 바알 신을 모시는 타락과 오만의 도시로도 불렸으며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전도를 하러 왔던 유서 깊은 도시이다.
티레 유적지는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로마시대의 전차경기장 히포드롬 hippodrome과 하드리안 개선문 Hadrian’s gate이 있는 site와 이곳에서 2Km 정도 떨어진 지중해안 site로 구분되어 있다.
티레시민들은 알렉산더 대왕 침략시 두로섬(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었음)으로 도망가 7개월동안 항거하다가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섬을 둑으로 연결해서 점령한 뒤 괘씸죄로 6천여 명의 시민 전체가 죽임을 당하고 섬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로마시대의 유적이다.
입구에는 <Tyre Al – Bass Heritage Site>란 안내판이 외롭게 서있다. 길 옆으로 부서진 중세시대 성벽잔재를 걷다 보면 잘 닦여진 로마식 도로 끝머리에 하드리아누스황제(하드리안) 개선문이 있다.
지금은 도로에 깔려 있는 대리석 사이로 삐져 나온 잡초들로 거칠어 보이지만 그 시절에는 수시로 전차가 오가는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였을 것이다.
(티레) 개선문 가는 좌우로 죽은 자의 도시(necropolis)가 있다.
(티레) 죽은 자의 도시에 있는 공동묘지 (티레) 십자군으로 추정되는 석관 / 귀향도 못하고 구천에 떠도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도로 좌우로는 로마시대의 특징을 나타내는 <죽은 자의 도시 necropolis>가 있어 여러 장례시설과 지금의 납골당처럼 여러 층에 칸을 나누어 보관되었던 평민들의 공동무덤이 있고 공동묘지 이웃하여 정교하게 조각된 로마 귀족들의 석관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
석관들은 큰 것과 작은 것, 조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리고 조각이 정교한 것과 마지 못해 대충 판 것 등등 각양각색이다. 권력의 유무, 자산의 많고 적음 그리고 신분의 차이가 주검을 묻는 관까지 차별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니 씁쓸하다.
티레) 하드리안 개선문 / 말과 전차는 개선문으로, 사람들은 쪽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독립문 정도 크기와 외관이 비슷한 하드리안 개선문은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에 지어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원래 모습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개선문을 통과하는데는 2개의 문이 있는데 작은 문으로는 사람들이, 개선문으로는 말이나 전차가 지나 다녔다고 한다.
도로 바닥에 깔린 대리석 보도블록은 전차의 무게로 다져져 지금도 파손된 곳 없이 평평함을 유지하고 있다.
(티레) 개선문에서 히포드롬으로 가는 길
도로는 잡초에 가려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잡초 위를 걸어보면 아직 웅덩이 하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로마 도로에서 살짝 샛길로 벗어나면 앞이 뻥 뚫린 개활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전차 경주를 하던 히포드롬으로 운동장 끝머리 중앙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반환점(turning point)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티레) 히포드롬 / 세계에서 제일 큰 전차경기장으로 멀리 보이는 오벨리스크를 돌아와야 한다
(티레) 경기장 관중석 /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으나 규모가 엄청 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티레) 오벨리스크 / 전차경기의 반환점 (turning point)으로 사용되었다.
경기장의 규모는 길이가 160m로 2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고 아직도 관중석 일부가 남아 있어 현존하는 최대 전차 경기장이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경기장을 한바퀴 돌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려 나보다 연세가 무려 2천살이나 더 드신 돌무더기에 무례하게 걸터 앉았다.
‘죄송해유. 지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잠깐만 실례해유.’ 멀지 않은 곳에서 레바니즈 총각(?)이 나와 똑같이 자세로 걸터앉아 물담배를 빨아대다가 어디선가 들리는 아잔소리에 깜짝 놀라며 갑자기 신발을 벗고 메카를 향해서 코를 처박는다. 아니 절을 한다고 해야 예의겠지? ‘고 녀석 담배 빨 때 똘끼는 온데간데없고 종교의식 치를 때는 꽤나 진지하구먼. 오해해서 쏘리햐.’
티레) 아잔 소리에 맞추어 예를 갖추는 이슬람 청년/ 물담배를 피다 아잔 소리를 듣자마자 신발을 벗고 기도를 하고 있다.
(티레) 로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열주도로
티레) 비잔틴 시대의 특징 ,모자이크 타일 도로
(티레) 로마시대의 공중목욕탕
유적지에는 높고 낮은 로마식 열주들이 도열해 있다. 해안으로 쭉 뻗은 열주도로를 걷다 보니 한 켠에는 직사각형의 작은 경기장(또는 극장)도 있고 그 앞으로는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로마식 공중목욕탕의 잔재들이 남아있다.
열주도로 바닥은 딱 봐도 오래된 귀한 모자이크 타일이 깔려 있는데 그 타일 위를 어떤 제재도 없이 자유롭게 활보 할 수가 있다. 비잔틴시대의 모자이크 타일인데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해도 되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따사롭게 비추는 햇살과 살랑거리는 해풍을 맞으며 열주에 기대어 깜빡 졸다 고개 꺾임에 놀라 깨었다. ‘아이 X팔려.’ 주변을 살펴보니 다행이 아무도 없고 멀리 보이는 돌담 근처 앞마당에 파라솔이 보인다.
‘혹시 매점? 아니면 아직 잠이 덜 깨 헛것을 본 겨?’ 잠도 깰 겸해서 어슬렁거리며 가보니 유적지 관리인이 사는 가정집인데 부업으로 매점 영업도 한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퉁퉁한 이슬람 아지매는 2남 2녀의 고만고만한 자식들을 거느린 다산가족의 위대한 엄마이다.
(티레) 관리인 가족 / 2남2녀의 가족으로 모두가 명랑, 쾌활하여 내가 행복해짐을 느꼈다.
음료수를 시켜 놓고 아이들과 내 특기인 바디 랭귀지로 소통을 시도하는데 큰딸이 영어로 선빵 놓으며 내 가족조서를 먼저 쓰기 시작한다. 똑순이의 통역으로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 사탕을 주려고 배낭을 뒤지니 시돈의 축구선수 꼬맹이들한테 탈탈 털려 남은 게 없다.
‘앗 이런 대실수를. . . 우짜지?’ 위대한 엄마에게 하회탈 열쇠고리를 선물하며 약간의 돈을 애들 학용품 사라고 전하는데 돈은 극구 사양을 한다. 한참의 실갱이 끝에 매점에서 파는 과자를 후하게 쳐서 사는 것으로 대신하고 과자는 엄마가 모르게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뭔가 조그만 것이라도 아이들에게 선물하였다는 것으로 내 마음의 빚이 일부나마 덜어지는 것 같다.
큰 딸은 티레 해변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며 자기가 지름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선다.
해안 모래사장을 걷다 보니 몇몇 청춘 커플들이 뜨문뜨문 앉아 밀담(?)을 나눈다. 대부분은 건전 페이스인데 개중에는 과감하게 어깨를 감싸고 징한 포즈의 커플도 있다. ‘어디나 용감한 놈, 시대를 앞서가는 놈이 있는 거니까. You win! 엄지 척’
티레) 티레 해안 방파제의 연인들.
오늘의 바쁜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비둘기바위 위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수고한 이스마일과 레바논산 와인으로 힘차게 축배를 나눈다.
“Bravo for peace and development in Lebanon. Cheers!”
다양한 종교갈등으로 수년 동안 내전과 충돌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나라 난민들에 대한 포용 정책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잃어버린 낙원 레바논,
중동국가들의 부러움을 샀던 예술, 패션, 음악의 중심이라는 명성을 하루 빨리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도시가 아름답기에 역사의 뿌리가 깊기에 그 아픔이 더 크다.
Eco-Times 한용성 여행작가 /글.촬영 [前 금호타이어 사장. 現 케이프투자증권(주) 고문]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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