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성의 세계여행 (23)] - 천의 얼굴을 가진 인도 (2) --인도의 작은 티베트 <다람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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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으로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뒤 인도 수상 네루가 티베트 망명 정부 장소를 제공하여 1959년부터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난민들이 둥지를 튼 다람살라는 식민 통치 시절 영국인들이 즐겨 찾던 산간 휴양지이다.
암리차르에서 200km 거리의 다람살라로 가려면 5시간 남짓을 달려야 하는데 대부분이 꼬불꼬불한 산길이고 군데군데 도로공사 구간도 많아 평생 겪어보지 않던 차멀미로 머리도 띵하고 엉덩이 상태도 정상이 아니다.
호텔 식당의 늦은 아침식사 제공으로 9시를 넘긴 출발로 출근시간의 트래픽 잼 없이 암리차르 시내를 쉽게 빠져나왔다.
자동차, 오토바이, 오토릭샤 (일명 툭툭이) 그리고 사람이 뒤엉켜 오가는 도로를 숨가쁠 정도로 경적을 누르며 속도를 낸다. 10년 베트남 거주로 교통 무질서에 단련된 나도 눈을 감을 정도로 아찔한 순간들의 연속인데 조수석에 앉은 가이드는 벌써 졸고 있다. 곡예 운전하는 운전사나 그 옆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가이드나 대단한 인도인들이다.
‘배 째!’
도로의 폭군 소가 지나가는 차에 아랑곳하지 않고 졸고 있다. 그래도 이 놈은 자기 목숨을 귀히 여겨 도로 중앙은 피해 앉았네.
도로 중앙에 소들이 널 부러져 있어도 경적 한번 누르지 않고 남은 한 개의 차선으로 서로 양보하며 잘도 다닌다. 사람한테는 신경질적으로 경적질을 하더니만. . . 교통경찰 완장을 소꼬리에 채워주면 경적소리 없이 조용해질 것 같다. 소는 도로에, 댕댕이는 골목길을 자기네 영역인듯 한자리씩 차지한다.
논밭농사를 짓는 평원이 끝나자마자 꼬불꼬불 좁은 산길을 오르는데 커브길에서도 속도 줄임 없이 그대로 달린다. 시골길로 접어들며 비포장도로가 많아지니 이번에는 먼지가 목과 입이 칼칼하게 만든다. 쫓기듯 쉬지 않고 운전을 하는 기사가 걱정되어 잠시 쉬면서 길가의 구멍가게에서 처음으로 인도인의 최애 드링크 짜이를 마셨다. 홍차에 생강, 우유, 설탕을 넣어 끓여 만드는데 내 취향은 아니라 반도 마시지 못하고 반납했다.
길 옆으로 집들이 많아 지고 깔딱 고개를 힘겹게 넘으니 시야가 탁 트이면서 가파른 경사에 지은 집들이 조금 불안해 보이기는 해도 울창한 숲과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다람살라이다.
도심으로 내려오니 다양한 종류의 구멍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상가를 이루고 있다. 모든 도로는 폭은 좁고 경사가 가파른 커브길이 대부분인데 삿대질 없이 서로 양보하며 신호등도 없는 도로에 경적소리 없이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여기는 인도가 아닌 듯싶다. 이런 모든게 부처님의 공덕이 아닌가 싶다.
티벳 음식점을 찾다 끼니 때를 놓쳐 우선 남걀 사원 (Namgyal Gompa)을 찾았다.
남걀 사원
티베트 임시 정부의 국가적인 행사와 종교 의식을 치르는 중앙사원 역할을 하는 동시에 많은 불제자를 키워내는 승가 학교이기도 하다. 좌우로 기숙사들이 여러 채인 것을 보아 학승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승과 제자
내게 사찰 입장을 허락한 선생 스님이 제자의 질문에 답을 주고 있다. 지금 이 방에서 수학하는 학승들은 선생 스님의 수제자로 평생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장인이 기술을 전수하는 도제 교육이라 할까?
이곳은 망명정부의 중앙 사원으로 종교 및 정치에 관련된 주요 의식을 거행하는 사원이기도 하지만 승려가 되기 위해 티벳에서 탈출한 젊은이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최대 규모 승가학교이기도 하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려 급하게 우산을 펼치고 경내를 둘러본다.
빨래가 널려진 기숙사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본당에 다다를 수 있다. 본당에서는 여러 명의 학생 스님들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불경 암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 촬영 금지라는 팻말을 보고 어정쩡 서있는 내게 선생 스님이 인자한 미소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공부하는 학생 스님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 화려한 불상을 보았지만 사진 찍는 것은 안되기에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한다.
불상 근처 높은 단에 달라이 라마 사진이 있는데 이 자리는 달라이 라마의 자리로 어느 누구도 앉을 수가 없다고 한다.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잠시 보고 돌아나오는데 선생 스님이 학생 스님 곁에 앉아 개인 지도를 하는 모습이 정겹다.
본당에서 내려다 본 사원은 티베트를 대표하는 사원답게 규모가 있다. 어디선가 꼬맹이 소리가 들려 살피니 동자승들이 교실에서 재잘거리며 뛰어 놀고 있다. 천진난만한 동자승들은 부모 손에 이끌려 이곳에 강제(?)로 맡겨진 불쌍한 아이들이라고 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스님이 되는 것이 영광이라 자발적으로 보내기도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입 하나 줄이려고 강제로 보내지기도 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가이드가 티베트 식당을 찾지 못하고 내가 구글링으로 찾아 모모 (만두)와 뚝바 (국수)를 먹었는데 네팔에서 먹었던 것에 비해 맛이 많이 뒤진다. 아마 띨빵한 가이드에 대한 불만이 입맛까지 떨구나 보다.
다람살라는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누어지는데 두 마을의 고도가 무려 500m나 차이가 난다. 아래는 인도인이 주로 거주하고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윗마을에는 티베트인이 살고 있다.
아랫마을에서 12km 떨어진 윗마을의 티벳 박물관과 추글라캉 달라이라마 사원을 향하는데 조금 전 넘어왔던 고개를 다시 넘어 40여분 꼬불길을 달려 도착했다.
백패커들로 번잡스러워야 할 간즈 시장골목이 비수기라 한산하다. 이 시장은 여느 인도 재래시장과 비슷한데 시장 끝자락에 허접스러운 천막으로 지붕을 얹은 티베트 난민 시장이 있다. 이곳 물건은 손가방, 스카프 등 손으로 자수를 새긴 조잡한 수공예품들로 대부분 필요해서 산다기 보다는 어려운 티베트인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구입 하였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종종 와서 설법을 한다는 추글라캉 달라이라마 사원은 간즈 시장을 지나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현대식 건물로 역사적인 유적지가 아니라 달라이 라마가 설법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몇몇 사람 만이 불상 앞에서 예불을 드리고 시주를 하는데 특이하게 절하는 사람은 없고 달라이 라마가 설법할 때 앉는 의자에 머리를 대고 두 손을 모아 조용하게 기도를 한다. 어제 갔던 황금사원의 열성적인 시크교도와 차분하게 예불 드리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티베트 박물관을 여러 차례 물어서 어렵게 찾았는데 시간이 지나 문을 닫았다. 속에서 뭐가 꿈틀거린다. 가이드로서 방문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 다니는 기본도 되어 있지 않다. 박물관 직원에게 상황설명을 해서 겨우 입장을 하였는데 초라한 외관처럼 내부에 전시된 것도 별로 볼 게 없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이 티베트 독립을 위해 메모를 남겼는데 집사람의 권유로 우리 부부의 마음을 담아 쓴 메모지를 걸어 놨다.
“티베트 국민들, 파이팅!”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 사진을 들고 티베트인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티벳의 독립을 기원합니다. 24.8.8 한용성/허미자]
티베트 독립을 기원하는 메시지
티베트 박물관을 방문한 여러 나라 사람들이 티베트 독립을 기원하는 쪽지를 전시하고 있다. 힘으로 나라를 빼앗는 못된 나라에게는 강력한 제재를 해야 되는데. .
티벳 박물관 앞건물에는 티베트인의 자활을 돕는 직업훈련원과 보건성이 있다.
왜? 이곳에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호텔에 들어서니 오후 내내 오락가락하던 비가 폭우로 변한다. 호텔 옆으로 흐르는 시뻘건 황토색 물이 보기에도 무섭다. 재래시장 구경을 포기하고 모처럼 오랜 시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그동안의 피곤이 풀린다.
그런데 많이 춥다. 냉큼 전기난로를 부탁하여 방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도 땀으로 범벅이 되는 더위로 힘들었는데 어이가 없다. 밤새 내리는 비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처님 만나는 꿈을 꾸며 푹 잤다. 설마 하나님께서 질투하지는 않으시겠지?
오늘은 차로 6시간을 달려 파키스탄 국경 근처의 잠무로 가서 그곳에서 50분 정도 비행하여 이슬람교의 무굴제국이 만든 아름다운 정원의 도시 스리나가르로 날아야 하는 빡센 일정이다.
아침 6시 출발로 호텔에서 싸준 도시락을 들고 차에 올랐다. 짙은 안개와 비로 차 운전이 어제의 토끼에서 완전 거북이 모드로 전환되었다. 곡예운전을 즐기던 운전기사도 자기 목숨이 걸린 탓인지 신중, 겸손, 조심스런 태도로 안전 운전을 한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사이 고도가 낮아지며 안개가 없어지니 순간 태도를 바꿔 곡예 운전 시작이다. 서둘러야 탑승시간에 맞춘다고 하니 뭐라고 말도 못하고 애꿎은 안전벨트만 만지작 거린다.
잠무는 파키스탄과 종교 문제로 분쟁이 있었던 지역으로 잠무에 들어서면 외부의 통신망이 차단되고 이곳 통신사 라인만 이용하여 송수신을 할 수 있다. 로밍으로 지루한 차량 이동 시간을 유튜브 보면서 때웠는데 이곳에서는 핸드폰이 완전 먹통이라 잠으로 시간을 죽여야 한다. 자다가 눈을 뜨면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밭과 산 그리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집들이다.
게다가 잠무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사방 팔방으로 헤쳐 놓아 엉망이 되어 버린 도로에서 속도 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느긋하던 운전기사가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가오니 역주행을 하는데 오히려 마주오는 차량들이 비켜준다.
겨우 도착한 공항은 손님보다 경찰, 군인이 더 많은 것 같다. 건물 외곽에서 한번, 건물 입구에서 한번, 보딩패스 검사하면서 한번 그리고 또 검색대에서 최종적으로 한번 더. 아무리 분쟁 지역이었다 해도 너무 심하다.
복잡한 통과 절차 때문에 폭발 직전이었는데 예쁜 항공사 직원이 "한국분 이시죠?" 하며 여권을 대조하더니 미리 준비한 보딩패스를 준다. 그것도 한국말로... 어느덧 짜증 대신 웃음이 지어진다.
한국 출장을 다녀와서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한다면서 어눌한 한국어로 말을 건다. 태극문양 열쇠고리를 주었더니 사규 상 받을 수 없다 하며 사양해서 옆에 있던 책임자에게 설명하고 전달했더니 좋아 죽는다. 물론 책임자도 뇌물수수 공범을 만들었다.
탑승 시간에 늦을까 하는 초조함과 심한 검문으로 인한 짜증이 친한파 항공사 여직원의 친절로 사르르 사라진다. 공항에서 늦은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연착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본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의 모든 하천이 가뭄으로 누런 바닥만 보인다. 지구 온난화 영향이겠지?
잠무 공항 항공사 직원과 함께
탑승객 명단에서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티켓팅을 하여 기다렸다가 보딩 패스를 전해준 친한파 이쁜이다. 한국으로 출장을 다녀온 뒤 한국의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하였다는데 어눌하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는 하였는데. . .
지구촌의 재해 현장 ‘마른 내”
이 지역 여름은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홍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냇가에 물이 흘러야 되는데 . . .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 산맥 고봉에도 만년설이 보이지 않는다. 심히 걱정된다.
탑승 동기생 귀요미 남매
가족들과 휴가를 간다며 재잘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졸린 것을 참으며 티를 내지 않으려 힘들었다. 사진을 보니 다시 보고 싶다
잠시 눈을 부치고 있는데 옆좌석의 꼬맹이 남매가 호구조사를 시작한다. 가족들과 휴가를 가는 중이라며 이것저것 묻는 오빠는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초등학생이라 대화가 곧잘 통한다. 쉬고는 싶은데 쫑알대는 애들이 귀여워 대꾸를 하다 보니 착륙 안내방송이 나온다. 준비해 간 목걸이 볼펜을 걸어주니 부모들까지 나서서 감사인사를 전한다.
짐을 찾으려 내려오는데 “WELCOME TO PARADISE ON EARTH”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자칭 지상낙원이라는 이 자신감은 뭐지?
잠무의 첫 인사
‘지상낙원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무엇 때문에 지상낙원이라 하는지는 모르겠다. 달 호수에서 히말라야 산맥으로 솟는 일출이 멋지기는 한데 . . . 겨울에 눈에 쌓인 산이 지금보다는 훨씬 멋있을 듯하다. 지상낙원을 보러 또 와야 되남?
공항을 나오니 다람살라와는 다르게 강한 햇빛으로 피부가 따갑기까지 한다. 집사람은 썬 크림을 바르지 않는다고 또 한 소리 하지만 평소 때처럼 무시한다. 끈끈한 거보다 타는게 낫다.
무굴 제국 황제들이 조성한 공원 니샤뜨 박(Nishat Bagh), 샬리마르 박(Shalimar Bagh)으로 가려고 도심을 지나는데 총을 든 무장군인들이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이 지역은 파키스탄과의 분쟁 지역이기도 하고 95년 이슬람 테러단체에게 영국인 여행객이 납치, 살해되어 얼마 전 까지도 외국인 여행객들에게는 방문이 제한된 지역이었다.
니샤뜨 박(정원) 전경
높은 곳으로부터 계단식으로 정원을 만들고 정원 가운데로 냇가를 흐르게 하고 크고 작은 분수대를 설치하였다. 이곳의 물은 정원 앞의 달 호수로 흘러가겠지?
딸아. 시원하지?
이 지역은 이슬람교가 대세인 곳이라 성인 여성 대부분이 히잡을 쓰는데 많이 불편해 보인다.
달 호수(Dal Lake)에는 영국인들이 지상낙원이라는 이곳에서 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보트 하우스 (boat house)들이 호수가를 따라 늘어서 있다. 지금은 현지인들이 살기도 하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 식당, 기념품 가계들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니샤뜨 박은 고도를 가름하기 힘든 거대한 히말라야 산고도를 등에 업고 앞으로는 달 호수가 보이는 배산임수의 지세이다. 계단식 인공 냇가를 만들고 냇가 중앙으로 여러 개의 분수대를 설치하였으나 오늘은 몇 개의 분수만이 물을 뿜고 있다.
흐르는 냇물을 모아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뛰어드는 야외 수영장 역할을 한다. 인도 최고의 정원이라 설명하는 가이드에게 "요게?" 라는 말을 꾹 참는다.
니샤뜨 박의 야외 수영장
무굴제국이 만든 정원의 특징은 몇 개의 단을 만들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을 흐르게 하고 중간에 이런 웅덩이를 만든다. 그 당시 용도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방문객을 위한 수영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등에 땀이 흐르고 얼굴은 따갑고 특별한게 없어 당장 돌아서고 싶지만 들인 시간이 아까워 쥐 잡듯이 다니는데 집사람도 제법 잘 쫓아다닌다. 점점 걷는 나의 여행 스타일에 젖는 모습이 대견하다. 뭔가 허전해 재미거리를 찾는데 마침 이곳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중년부부를 발견하고 같이 찍자고 하였더니 흔쾌히 허락을 한다. 뻔스러움으로 재미와 기념사진을 건졌다.
카쉬미르 전통의상
전통의상을 빌려서 사진을 찍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의 취미인 것 같다. 그냥 들이대 인증샷을 득템 하였다.
샬리마르 박
사방이 공사 중이라 제 모습을 갖추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조금 전 방문하였던 니샤르 박보다 규모는 작으나 짜임새 있게 지어져 보수가 끝나면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 테라스에 물을 뿜어내는 분수를 상상해보자. 지금 모습은 이래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귀한 몸이시다.
샬리마르 박 분수
온통 보수공사 중이라 실망하고 나가는 방문객을 위한 것이지는 모르겠으나 출구 근처 분수만 힘차게 자기 일을 하고 있다. 미끼 상품인가?
바로 윗동네 샬리마르 박에 도착해서 가이드가 티켓 줄을 서는 동안 정문을 통해 살펴보니 방금 갔던 니샤뜨 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다. 급하게 뛰어 매표소로 가서 가이드에게 입장표를 취소하라 하였더니 외국인 전용 티켓이라 물리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팔지도 못한다고 한다. 참 주변 머리 하고는... 여러가지로 밉상이다.
참고로 인도 유적지 입장료는 내외국인 차이가 5 ~ 10배 아니 그 이상 차이가 나는 티켓도 있다. 역사적인 배경 설명도 못하는 가이드가 별 도움이 안되어 우리 부부만 들어 갈 것이라 전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유적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접스럽다. 게다가 사방이 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곳도 많다. 쉬엄쉬엄 걷다가 쉬다가 집사람과 잡담을 나누며 정원 끝까지 가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여행은 우리와 다른 새로운 것에 감명을 받는 것도 있지만 가족들끼리 잔디에 앉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삶을 느껴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하며 내게 여행의 가치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
약간 불량기가 있어 보이는 친구가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이틀 전 한국 여행을 마치고 이곳으로 왔다며 엄청 친한 척을 한다. 자기는 인도 사람으로 베트남 부인과 호치민에서 포딩(운송 중개업)회사를 한다고 묻지도 않는 개인사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입장료가 턱없이 비싸 아까웠는데 이렇게 사람 만나는 재미도 생긴다. 나도 할 수 없이 베트남에서 근무하였던 이력을 설명하고 몇 마디 아는 가라오케 베트남어로 대화를 이어간다. 베트남어가 막히면 영어로 신나게 떠들다 보니 어느새 정문이다. 서로의 즐거운 여행과 건강을 기원하며 아쉬운 이별을 한다.
도심에 위치한 호텔이라 저녁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동네 구경을 나갔더니 도심임에도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거의 없다 . 9시가 넘으니 상점들도 문을 닫아 거리가 어둡고 을씨년스러워 급히 호텔로 철수했다. 늦은 밤, 어두운 거리, 느낌이 싸한 골목길은 피하는게 낯선 이국땅에서 나를 보호하는 최선의 수비책이다.
다음날 달 호수에서 전통배 시카라 탑승 체험을 위해 5시에 일어났다. 이슬람교 지역이라 아잔 소리가 들린다. 어제 예약했던 운전 기사가 기도하고 오느라 30분 늦게 도착하였다. 그러면 엊저녁 약속시간을 미리 늦추어야 되는 것 아닌가? 참 가이드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인도에 와서 처음 느끼는 건조하고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달 호수 선착장에 도착한다. 시카라 보트는 사공이 뒤에서 노를 젓는 보트로 매트 위에 앉아 다리를 쭉 뻗어 앉을 수 있다는 것 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물 위 떠있는 Boat House와 연꽃 밭 사이로 노를 저어 천천히 나아간다. 달 호수 너머로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한 히말라야 산맥이 호수에 드리워지면서 점차 자기 멋을 나타낸다. 수상시장은 현지인들이 농수산물, 생필품을 사고파는 베트남, 미얀마의 수상시장과는 다르게 외국인 상대로 짜이, 커피, 빵, 기념품 등을 파는 몇 대의 보트만이 떠있다.
잠 죽이고 나온 시간이 아까워서 실망하고 돌아 나오는데 히말라야 산맥 위로 떠오르는 아침해가 달 호수에 비치면서 멋진 일출 장면을 연출한다. 이런 특색 있는 볼거리와 자연 경관으로 ‘지상낙원’이라는 별칭이 붙었나보다.
달 호수의 상가 골목
달 호수의 일출
수상시장의 규모에 실망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멋진 일출 광경이다. 이 정도로 ‘파라다이스’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시카라 전통배
사공이 배 뒤편에서 노를 저어 달 호수를 유람한다. 한낮 보다는 새벽에 시카라를 타고 수상시장 관람 후 히말라야 산맥에서 떠오르는 일출 광경을 보는 것이 일품이다.
달 호수의 하우스 보트
카쉬미르 주정부로부터 토지 구입 허가를 받지 못한 영국인들이 궁여지책으로 보트를 만들어 살았다는 하우스 보트들이다. 얼마나 이곳에서 살고 싶었으면 이렇게까지 하였을까? 지금은 주택, 호텔, 상점 등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뒤편으로 하리프라밧 성채가 보인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 수염이 보관되어 있다는 자미 마스지드 (Jami Masjid)에 갔더니 9시에 문을 연단다. 가이드가 뭔 생각을 하는지 정말 어이가 없다.
자미 마스지드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드의 머리카락이 있다는 모스크인데 이른 시간 방문으로 내부 관람은 하지 못하였다. 이 모스크는 카쉬미르 전 지역에서 제일 큰 모스크로 알려져 있다.
자미 마스지드 내부 (퍼온 사진)
모스크 담장을 따라 돌며 개구멍을 통해 사진을 찍는데 사원 댕댕이도 나를 무시하는 듯 목청껏 짖어댄다. 이틀 뒤에 만날 새 가이드에 기대를 걸며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린다.
잊자. 그리고 떠나자! 인도의 알프스 소남마르그로 . . .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Times 한용성 여행작가 / 글.촬영
[前 금호타이어 사장. 現 케이프투자증권(주)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