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순의 중국문화 기행 (24)] -소설(小雪)--24절기 중 20번째 (양력 11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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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소설을 명절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눈이 내릴 정도로 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김장을 서두르고, 시래기를 엮어 달거나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는 등 월동 준비를 위해 바쁘다.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가 풍년이 된다고 하여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날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하는데,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고려 고종이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몽진할 때 배를 차출하려 했으나, 다 피난을 간 바람에 어렵사리 손돌(孫乭)의 작은 배를 구했다. 그런데 왕이 보니 손돌이 일부러 물살이 급한 곳으로 노를 젓는 것이었다. 왕은 의심을 이기지 못하고 손돌을 참수하였다. 손돌은 죽기 전에 바가지 하나를 내놓으며,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바가지를 따라 뱃길을 잡으라.’라고 하였다.
물살은 점점 급해지므로 일행은 하는 수 없이 손돌이 가르쳐준 대로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세찬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바가지를 따라갔다.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었던 왕은 뒷날 손돌을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덕포진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이때가 10월 20일이었는데, 매년 소설 즈음인 이맘때가 되면 찬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진다. 그래서 소설 무렵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소설이 되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날씨가 건조하게 되므로, 우리가 김장하듯이 중국인들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그늘에서 말리는 ‘라로우〔腊肉〕’를 만들고, 중국식 소세지인 ‘샹창〔香腸〕을 만든다.
이와 같아 소설의 풍습은 대부분 월동을 위해 먹는 것과 관련이 있어 ‘소설(小雪)에는 장아찌(절인 채소), 대설(大雪)엔 라로우.’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소설 당일에 즐겨 먹는 음식과 준비하는 식품은 다음과 같다.
1.츠바〔糍粑〕 먹기
중국 남방에서는 음력 10월이 되면 츠바를 먹는 풍속이 있다. 츠바는 우리가 인절미를 만들 듯이 찹쌀을 쪄서 으깨어 만든 음식으로 소의 신인 우신(牛神)에게 바쳤던 제물이다.
2. 양고기 탕
겨울철 몸보신을 위해 양고기나 양고기탕을 먹는 풍습이 있다.
3. 내장탕 먹기
주로 호남·호북 일대에 사는 토가족(土家族)은 이때를 전후하여 새해맞이 돼지를 잡는 풍습이 있다. 갓 잡은 돼지의 체온이 채 식기 전에 고기와 내장과 신선한 채소를 섞어 끌인 것을 내장탕〔刨湯(포탕)〕이라 한다.
4. 물고기 말리기
특히 대만의 해안에는 숭어가 많이 잡히며, ‘시월 숭어는 살이 쪄 대가리가 뵈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5. 장아찌 만들기
‘소설엔 배추를 다듬고, 대설엔 시금치를 다듬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배추와 시금치는 깨끗이 씻고, 잘게 썰어 말려서 장아찌를 만들면 보존에 유리하며, 반찬으로도 별미다.
6. 바나나
대만에서는 바나나가 재배되므로 겨울철 추위를 견디기 위한 식품으로 선호한다.
7. 검은 곡식
날씨가 추워지면 쉽게 머리카락이 빠지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검은콩·검은깨·검은쌀을 많이 먹으면 탈모를 예방하고,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8. 무
겨울철에는 움직임이 적어 체내에 화기(火氣)가 쌓이기 쉬우므로 무를 먹어 몸 안에 쌓인 화기를 제거하기 위해 무를 먹는다.
9. 대추
붉은 대추는 몸의 기를 보하며, 혈액순환에 좋다고 한다.
10. 밤
밤을 구워 먹으면 신장에 보양이 되고, 혈액순환을 촉진할 수 있으며, 겨울철 찬바람에 걸리기 쉬운 목감기에 좋다.
11. 참마
중국인들이 산약(山藥)이라 부르는 참마를 겨울철에 먹으면 피부가 촉촉해지며, 노화를 방지하고,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한다.
12. 호박
호박은 기를 보충해주고, 위장을 좋게 하며, 해독작용을 한다고 한다.
각 지역에는 다음과 같은 속담도 전해오고 있다.
* 하북지방 : 소설에 눈이 오면, 내년엔 풍년이다.
* 산동지방 : 파를 거두지 않으면 속이 빈다. 무배추는 토굴에 저장하라.
* 하남지방 : 입동·소설엔 겨울 쟁기질.(땅을 깊이 갈아 해충을 죽이고, 이듬해 수확량을 늘린다.)
* 복건지방 : 소설에는 늦벼가 가득.(추수하지 않은 늦벼를 말함)
* 광동지방 : 소설 들판엔 농사일로 가득, 대설엔 들판이 텅 비었네.
당나라 시인 원진(元稹)은 〈소설시월중(小雪十月中)〉에서
莫怪虹無影, (막괴홍무영) 무지개 그림자 없음을 괘의치 마라,
如今小雪時。(여금소설시) 만약 오늘이 소설이라면.
陰陽依上下, (음양의상하) 음기는 솟아오르고 양기는 스며드니,
寒暑喜分離。(한서희분리) 추위 찾아오고 더위 즐거이 떠나네.
滿月光天漢, (만월광천한) 둥근 달은 은하에 빛나고,
長風響樹枝。(장풍향수지) 북풍은 나뭇가지에 우네.
橫琴對淥醑, (횡금대록서) 거문고 안고 맑은 술 대하나,
猶自斂愁眉。(유자렴수미) 어찌 쓸쓸한 마음 감출 수 있으랴.
라고, 찾아오는 추위와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는 마음을 잘 그리고 있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 Times 박충순 전문위원 dksrhr2@naver.com
(중국문학 박사. 전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