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순의《논어(論語)》 이야기 (23)] - 덕(德)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必有鄰。:덕불고, 필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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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덕(德)과 관련하여 ‘덕이 높다.’·‘덕이 많은 사람’·‘덕을 쌓아야 한다.’·‘덕을 베풀다.’와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 덕이란 윤리적 ·도덕적 선(善)에 대한 의지(意志)의 항상적 지향성(恒常的志向性) 및 선을 실현하는 항상적 능력이라고 한다.
《논어(論語)》에서는 이 ‘덕’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논어·이인(里仁)》에서 공자(孔子)께서는 ‘군자는 덕을 생각하나 소인은 재물을 생각한다.(君子懷德,小人懷土。:군자회덕, 소인회토)’라고 한 말을 통해 덕이 선도(善道), 즉 올바른 처신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헌문(憲問)〉에서, 어떤 사람이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면 어떠냐고 물으니, 공자께서는 ‘그러면 덕에는 무엇으로 갚겠는가? 원한에는 곧음으로 갚고, 덕에는 덕으로 갚는 것이다.
(何以報德?以直報怨,以德報德。: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라고하여, 덕을 은혜(恩惠)의 의미로 말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즉 덕이란 ‘올바른 도리의 실천과 은혜’라고 한다면,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면 아들의 올바른 도리 실천의 덕이고, 부모가 자녀를 지도하고 가족을 돌볼 수 있으면 부모 은혜의 덕이라 할 수 있겠다.
나아가 학생은 스승을 존경하고, 교사는 사랑으로 가르쳐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각각 교사와 학생의 아름다운 덕일 것이다. 덕이란 바로 이와 같이 공허하거나 요원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볼 수 있으므로 우리의 말과 행동, 일을 하는 우리의 의도, 태도, 절차와 방법까지도 모두 '덕'에 따라야 하며, 이는 사회의 기반을 마련하고 나아가 사회의 안정과 조화, 국가의 번영도 이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大學)》의 첫마디에서도 ‘큰 학문의 도는 밝은 덕, 즉 인륜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사랑함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경지에 이르러 멈추어야 한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고 하였다. 여기서 ‘명명덕(明明德)’이란 광명정대(光明正大)한 덕, 바로 올바른 인륜을 밝히는 이치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덕은 정치·인간관계·학문 등 여러 면에서 중요하게 인식 되었다.
〈위정(爲政)〉에서 ‘덕으로서 청치를 하여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여러 별이 이를 중심으로 벌려 있는 것과 같다.
(爲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이중성공지)’고 하여 덕으로 다스릴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덕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바로 ‘덕치(德治)·예치(禮治)’를 말하며, 〈팔일(八佾)〉에서 공자께서 노(魯)나라 정공(定公)의 물음에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성으로 섬겨야 한다.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군사신이례, 신사군이충)’라고 한 말과 맥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이와 비슷한 말로 〈위정〉에서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게 되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려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게 된다면,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또 품격있게 된다.
(道之以政,齊之以刑,民免而無恥;道之以德,齊之以禮,有恥且格。:도지이정,제지이형,민면이무치;도지이덕,제지이례,유치차격)’라고 덕과 예로서 다스릴 수 있기를 권하고 있다.
덕이 이와 같이 상대를 인정하고, 나아가 존중하는 마음이며, 그 표현은 예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인〉에서 공자께서는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必有鄰。:덕불고, 필유인)’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반드시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덕 있는 사람은 어려울 때에도 이웃과 함께 견디는 것처럼 항상 같은 목소리로 응답하고, 같은 정신을 구하는 동반자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그렇게나 어려웠던 춘추시대(春秋時代)를 살아간 공자가 크게 출세하지는 못했으나 삼천여 명의 제자가 따랐음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덕을 키우는, 수덕(修德)의 방법은 무엇일까? 〈안연(顏淵)〉에서 자장(子張)이라는 제자가 덕을 숭상하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는 ‘성실함과 신의를 위주로 하고, 의로움으로 나아가는 것이 덕을 숭상하는 것이다.(主忠信, 徙義, 崇德也。:주충신, 사의, 숭덕야)’라고 대답하였다.
이와 비슷한 말로 〈안연〉에서 번지(樊遲)라는 제자도 공자에게 덕을 숭상하는 방법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는 ‘일을 먼저 하고, 이득은 뒤로 미룬다면, 덕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先事後得, 非崇德與?:선사후득, 비숭덕여)’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논어》에서 말하는 ‘덕(德)’이란 ‘성실함과 신의를 위주로 하고, 의로움으로 나아가는 것(主忠信, 徙義)이며,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적인 이득은 뒤로 미루는 것(先事後得)’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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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Times 박충순 전문위원 dksrhr2@naver.com
(중국문학 박사. 전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