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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의 ‘노래로 읽는 사자성어 이야기’(8)] -사고무친(四顧無親)-

Eco-Times | 기사입력 2023/05/26 [08:49]

[고재경의 ‘노래로 읽는 사자성어 이야기’(8)] -사고무친(四顧無親)-

Eco-Times | 입력 : 2023/05/26 [08:49]

 

 

 



 

 

사고무친(四顧無親)은 사방을 둘러봐도 친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몹시 외로운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자우림 김윤아가 부른 ‘고독한 항해’ (작사·곡 개미)의 노랫말은 사고무친이라는 절대 고독의 서사를 웅변적으로 표현한다.

 

1절 도입부의 배경은 차가운 ‘바람’과 시들어 가고 있는 ‘꽃잎’이다. 이러한 구성 요소들은 실연당한 연인이 숨넘어갈 정도로 외쳐대는 절규에 대한 상징물이다. 즉 가혹한 운명의 도래를 암시하는 매서운 바람은 화자의 심장을 찌르듯 아프게 한다.

 

따라서 원치 않는 이별의 문턱에 선 그의 가슴에 비수를 내리꽂는다. 게다가 화려하게 만발했던 꽃잎도 이제는 색깔과 에너지를 잃어 땅 위에 떨어져 시들어 간다:

 

 

‘차가운 바람은/나를 찌르고/무너진 가슴을 더 아프게 해/꽃잎은 떨어지고/이제는 다 시들어’.

 

결국 그는 살이 에이는듯한 심각한 내상을 입는다. 그리고 헤어짐의 여파와 충격이 너무 커서 ‘발끝이 닿지 않는 깊은 늪’ 속에 빠져든다. 빠져나올 수 없는 상실과 이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화자의 마음은 가리가리 찢겨진다.

 

이제 그는 심리적으로 더 이상 ‘버틸 수’조차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한다. 게다가 ‘칠흑 같은 어둠이’ 그의 몸과 마음 전부를 송두리째 삼키려 하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예기치 않은 공포로 다가온다.

 

2절 가사 내용은 떨어진 ‘나뭇잎’과 거센 ‘폭풍우’로 대변되는 주제어가 화자의 쓰라린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화자는 지금 땅 위에 떨어져 나뒹구는 나뭇잎 위로 눈물을 떨군다. 떠나는 연인이 혹시라도 ‘뒤 돌아 볼까’ 내심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희망 회로일 뿐 ‘헛된 바램’에 지나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저만치서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다. 이렇게 비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그 언덕에’ 화자는 애처롭게 ‘홀로’ 남겨진다:

 

‘내 맘은 찢겨져/버틸 수가 없네/칠흑 같은 어둠이/날 삼키려 해/아~아~/홀로 남겨진/이 고독한 항해’.

 

화자가 비바람이 거센 언덕에 서 있는 모습은 인간 실존의 심연을 그려낸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명작 <폭풍의 언덕>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운명적 사랑과 이별의 무대가 바로 거친 폭풍이 그칠 날이 없던 황량한 언덕이기 때문이다.

 

곡명 ‘고독한 항해’에 등장하는 화자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고립무원에 처해 있다. 정처 없는 곳으로 저 멀리 떠나는 연인을 뒤로하고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 즉 연인을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으로 떠나보낸다.

 

이제 그도 외로운 항해의 여정을 똑같이 떠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처지에 놓인다. 이것은 마치 그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온몸에 흠뻑 맞으며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것만 같다. 이와 같은 지극한 아픔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연인에게 강렬히 속박되어있는 화자의 심정은 바로 지통재심(至痛在心)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고 외롭게 살아가면서 홀로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신세를 이르는 말이 사고무친이다. 누구든지 살면서 외로움을 경험한다. 신체적 호르몬 변화와 경제적 빈곤에 따른 고립이 각각 이유일 수 있다. 또는 곡명 ‘고독한 항해’의 노랫말에서 화자의 경우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별리(別離)의 고통이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로움을 이겨낼 수 없다면 차라리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홀로 즐기는 것이 좋다.

 

미국 사상가 헨리 소로는 말한다: ‘나는 아직까지 고독만큼이나 편안한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대부분 경우, 우리는 방에서 혼자 지낼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더 외롭다’. 요즘 일상에서 음소거가 필요한 때다. 고독해야 고독하지 않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다. 고독을 즐기고 고독에 익숙해져야 자신의 본질을 주체적으로 찾을 수 있다.

 

뉴턴, 쇼펜하우어, 니체, 반 고흐, 베토벤, 아담 스미스, 카프카 등이 평생 독신자였다.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고독한 대항해에 전력투구해서 불멸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세기적 인물들이다.

 

 

Eco-Times 고재경 전문위원 (배화여대 명예교수/영문학 박사/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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