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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의 ‘노래로 읽는 사자성어 이야기' (9)] -백화지원(白華之怨)-

Eco-Times | 기사입력 2023/06/07 [09:14]

[고재경의 ‘노래로 읽는 사자성어 이야기' (9)] -백화지원(白華之怨)-

Eco-Times | 입력 : 2023/06/07 [09:14]

 

 




 

백화지원(白華之怨)은 ‘가장 하얀 빛이 사라진 것에 대해 원망하다’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인의 슬픔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아이비가 부른 ‘이럴 거면’ (작사·강은경 작곡·박근태) 곡의 노랫말은 사랑을 상실한 여성의 비애와 원망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럴 거면 날 흔들어 놓지 말지/이럴 거면 잘해주지나 말지/이럴 거면 처음 스쳐 가게 놔두지/너를 모르는 채 살게 하지/떠날 거라면’.

 

지금 화자는 연인으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고 원망을 토로하고 있다. 화자는 연인과의 관계에 파열음이 발생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그가 체감하는 충격이 크게 다가온다. 헤어질 줄 진작 알았더라면 연인을 아예 ‘모르는 채’ 살게 놓아두지 왜 화자인 ‘날 흔들어’ 놓았는지 그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의 연인은 연애 시에 그를 사랑하고 극진히 배려한 듯싶다. 하지만 현재 두 사람은 이별의 종착역에 서 있다. 특히 화자인 그는 결별을 선언한 연인에게 ‘원망’과 ‘후회’를 한다 해도 연인을 향한 사랑은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 담을 수’ 없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는 마치 배꼽을 물어뜯으려 하지만 미치지 못해 뒤늦은 원망과 후회를 해도 소용없다는 뜻을 지닌 서제막급(噬臍莫及)의 한계적 상황에 화자가 봉착한 처지와 유사하다 할만하다. 화자는 연인을 향해 갈수록 불평의 격한 심정을 쏟아낸다:

 

‘나를 울리려고/이럴려고/날 사랑했니/너를 사랑하게 했니/멀쩡한 사람/왜 넌 바보 만들어/버릴 거면/그럴 거였으면/왜 내맘 모두 가져간 거야/조각나버려/이젠 다시 쓸 수도 없게’.

 

화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연인은 ‘멀쩡한 사람’이자 ‘잘 살던 사람’인 화자를 바보로 만들어버린 몰상식한 존재이다. 왜냐면 연인이 화자를 이미 마음속에서 ‘떠나 지워 버릴’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화자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인이 화자를 사랑했다 하여도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화자가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화자는 원망의 눈물을 흘린다.

 

사실 화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 전부를 연인에게 전적으로 헌신했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그 마음도 산산조각이 나서 다시는 쓸 수도 없게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 화자는 망연자실한다. 연인에 대한 상실감과 아쉬움은 다음과 같이 정점에 다다른다:

 

‘내 머리는/내 입술은/매일 네 욕만 하는데/나의 가슴은/내 눈물은 자꾸 네 편만 들어’.

 

여기서 화자의 머리와 입술은 연인에게 험담을 하는 가운데 가슴과 눈물은 연인의 ‘편만’ 든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화자의 가슴 한편에는 연인을 향한 그리움이 아직 남아있음을 방증한다. 아마 화자는 연인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예상했더라면 연인을 ‘붙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연인에게 ‘떼라도’ 써 보았을 가능성도 농후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연인을 너무 사랑해서 연인 없이는 ‘못 산다고’ 막무가내 상황을 연출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울릴 거면/그립게 할 거면/차라리 너의 곁에서 울려/볼 수 있다면/혼자 사랑해도 되니까/나만 사랑해도 되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그 사람을 잃은 슬픔은 비통하다. 특히 사랑에 빠진 연인 관계라면 상대방을 상실한 그 슬픔은 형용할 수조차 없다.

 

세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대명사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면서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줄리엣이 죽은 줄 오해 했던 로미오는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로미오의 자살을 목격한 줄리엣도 로미오의 검을 빼들어 자결함으로써 자신에게 밀려오는 거대한 슬픔의 파도를 넘지 못한다.

 

트롯 가황 나훈아는 사랑을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하고 트롯 여제 심수봉은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고 노래하였다. 그런데 눈물의 씨앗인 사랑을 잃은 여인의 슬픔을 누가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을까.

 

사랑보다 더 슬픈 것은 과연 정일까. 지우기 힘든 사랑과 정의 슬픔과 상처를 보듬어 줄 치유의 묘약은 바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세월이 약인 셈이다.

 

Eco-Times 고재경 전문위원 (배화여대 명예교수/영문학 박사/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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