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로잡고자 했던 도(道)에 대한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 바로 〈이인(里仁)〉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朝聞道, 夕死可矣!:조문도, 석사가의)’라고 한 말일 것이다.
공자가 죽음까지도 언급해 가며 그리도 애틋하게 그렸던 도란 무엇일까? 우리는 증자(曾子)의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이인〉에서 공자가 증자에게 ‘내 도는 하나로 관통되었다.(吾道一以貫之。:오도일이관지)’라고 하자, 증자는 이 말을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부자지도, 충서이이의)’라고 설명하였다.
즉 공자가 그토록 애틋하게 그렸던 도가 바로 ‘성실의 충(忠)과 용서의 서(恕)’를 실현하는 것이라 한다면, 성실은 배움과 수양을 통해 자신의 내적 충만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덕목이고, 용서란 수양을 통해 내적으로 충만 된 인격에 의해 밖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바로 자기 학습과 수양을 통해 타인을 사랑 함이 공자가 그리도 그렸던 도(道), 즉 인(仁)의 정신이 실현되는 사회라 볼 수 있겠다.
공자는 부단히 배울 것과 배움을 통한 자기의 인격적 수양을 강조하였으므로 《논어》의 첫마디부터 ‘학습’을 강조하였으며, 세상 사람이 모두 내 인격 수양의 선생이 될 수 있다고 ‘三人行, 必有我師焉(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고까지 하였다.
〈이인〉에서는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아질 것을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를 보면 속으로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見賢思齊焉;見不賢而內自省也。:견현사제언;견불현이내자성야)’라고 인격 수양의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
그렇다면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어떠하였을까? 먼저 공야장(公冶長)이란 제자를 사위로 선택한 기준을 보면 ‘시집 보낼 만하다. 비록 감옥에 갇힌 적은 있으나,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可妻也。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가처야。수재류설지중, 비기죄야)’라고 하면서 비록 전과자일망정 그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믿었기에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다.
또 남용(南容)이란 제자를 조카사위로 선택함에도 그 판단기준을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면 버림받지 않을 테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해도 처형은 면할 것이다.(邦有道不廢, 邦無道免於刑戮。:방유도불폐, 방무도면어형륙)’라고 하였다.
공자의 이러한 기준의 근거는 무엇일까? 《중용(中庸)》 〈제1장〉의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하고, 그 성을 따라 사는 것을 도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라는 말과 공자가 〈옹야(雍也)〉에서 ‘사람의 삶은 정직해야 한다.
정직하지 못하게 산다면 요행히 화를 면하고 있는 것이다.(人之生也直,罔之生也幸而免。:인지생야직,망지생야행이면)’라는 말을 통해 볼 때 인간은 바르게 태어났으므로 곧게 살아야 하나 모든 사람이 바르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공야장’이나 ‘남용’은 공자로부터 교육받는 제자들이며, 그들을 평소 지켜보았을 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라 판단하였기에 사위로 선택한 것이다.
공자가 배움만큼이나 ‘신의(信義)’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위정(爲政)〉에서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다면 어디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큰 수레에 수레 채가 없거나 작은 수레에 멍에 걸이가 없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가게 하겠는가?(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인이무신, 부지기가야。 대거무예, 소거무월, 기하이행지재)’라고 한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저지른 잘못을 아는 즉시 뉘우치고, 반성하며,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공자는 〈이인〉에서 ‘사람이 저지른 잘못은 각기 그 부류를 따른다. 그 잘못을 보면 그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人之過也,各於其黨。觀過,斯知仁矣。:인지과야, 각어기당。관과, 사지인의)’라는 말을 통해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통해 그 사람의 인격과 성격 등 됨됨이까지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공자는 인간이 올곧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나아가 잘못을 강요하는 권력자에게 휘둘리거나 이용당해서도 안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공야장〉에서 ‘위나라 대부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처신하였으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처신하였다.
그 지혜로운 사람으로 처신하는 것은 따라 할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은 사람으로 처신하는 것은 따를 수가 없다.(甯武子,邦有道,則知;邦無道,則愚。其知可及也;其愚不可及也。:녕무자, 방유도, 즉지;방무도, 즉우。기지가급야;기우불가급야)’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공자 스스로는 자신을 타인에게 아첨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매우 진실하게 예를 실천하였음을 〈팔일〉에서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니, 사람들은 아첨하는 것으로 여기더라.(事君盡禮,人以為諂也。:사군진례, 인이위첨야)’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 지조가 강한 사람임을 〈자한(子罕)〉에서 ‘삼군의 장수는 벨 수 있으나, 필부라도 그의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三軍可奪帥也,匹夫不可奪志也。:삼군가탈수야,필부불가탈지야)’라 말하고 있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 Times 박충순 전문위원 dksrhr2@naver.com (중국문학 박사. 전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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