哀슬플 애 而어조사 이 不아닐 불 悲슬플 비
애이불비(哀而不悲)는 ‘속으로는 너무 슬퍼서 가슴을 애태우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며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승훈이 부른 ‘애이불비’ (작사·신승훈, 양재선 작곡·신승훈)는 곡목 자체가 극명히 말해주듯이 애이불비의 정서가 확연히 드러나는 곡이다.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대/나를 떠나려는 이유를/굳이/알려 하지 않으렵니다’.
이 곡의 화자는 아마도 남성적 화자인 듯싶다. 지금 그는 자신의 연인과 이별의 문턱에 서 있다. 즉 사랑과 별리의 두 갈래 길에 놓여 있는 그로서는 사랑의 지속 여부에 대한 능동적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선택은 전적으로 상대 연인의 의사 결정에 달려 있다. 바꿔 말하면 화자는 지금까지 연인과 지속해왔던 사랑을 마감하는 종착역에 도착해 있다.
여기서 화자는 연인이 자신을 ‘떠나려는’ 사유를 ‘굳이’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왜 ‘굳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별리의 이유를 구태여 알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은 반어법적 표현인 듯싶다.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은 슬픈 감정을 억압하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고차원적으로 승화된 감정이면서 동시에 세련된 정서의 역설적 표현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진심은 자신의 연인이 알 수 없는 곳으로 ‘가시는 그 길에’ 오직 ‘행복’을 염원할 뿐이다. 즉 내면적으론 이별의 아픔이 너무 크지만 외면적으론 슬픔의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애이불비의 정서를 대변하는 셈이다.
물론 화자의 입장은 연인과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연인의 언급에 그는 흐르는 ‘눈물’로 연인의 마음을 설득도 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이별 만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헛수고로 끝난다.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그는 연인을 ‘많이 미워도’ 해본다.
실망과 좌절과 미움이 혼재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보기도 한다. 이윽고 연인은 자신의 확고한 이별 결정을 그에게 통보한다. 이제 그도 연인에 대한 미련을 접는다.
‘더 이상/내가 아니라 하기에/이제는 편히 보내주려 합니다’.
애이불비 정서의 정점은 ‘애이불비’ 곡 노랫말 중후반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화자는 헤어져야 하는 운명을 수용한다. ‘사랑하는 님’이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되어 암울한 현실을 버틸 수 없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자신의 사랑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연인과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러한 숙명이 가엽고 슬프지만 그렇다고 비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애이불비 감정은 연인이 가야할 길이 ‘어둡고 힘든 길’이라도 화자 자신을 ‘태워’ 연인이 떠나는 길을 환히 ‘밝혀’ 주겠다는 헌신 맹세로 이어진다.
또한 그는 ‘신이 내게 주신 행복이 여기가 끝이라’해도 그리고 ‘눈물만 남았다’ 해도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면서 일종의 이별의 정한(情恨)을 긍정적으로 형상화한다.
이제 화자는 승화된 사랑의 감정을 토대로 연인을 대한다. 즉 연인에 대한 아쉬운 미련과 집착을 모두 버린다. 비록 연인이 하늘 높이 저 멀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이 반짝이는 우주 공간으로 떠난다고 가정해도 그 별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의 연인이 ‘어디로 떠나든지’ 화자는 영원한 별이 되어 연인만을 비추겠다고 서약한다. 이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화자가 이별의 슬픔과 비통을 가슴으로 삭이며 숭고한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애이불비의 애(哀)는 슬픔의 표현을 표상한다. 반면에 불비(不悲)는 슬픔 감추기를 심상한다. 슬픔에는 몸이 상할 정도의 외재적 슬픔도 있고 마음이 상할 정도의 내재적 슬픔도 공존한다.
일상을 치열하게 살다 보면 속으로는 가슴을 까맣게 태울 정도로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감추는 애이불비의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사모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헤어져야만 하는 아쉬운 이별의 정한이 그러한 경우이다.
여하튼 선남선녀가 별리의 슬픔과 비통을 한 차원 높은 애이불비의 고귀한 감정으로 승화시키기가 쉬운 일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Times 고재경 전문위원 (배화여대 명예교수/영문학 박사/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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