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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성의 세계여행 (21)] -발트해의 숨은 진주 탈린 -

Eco-Times | 기사입력 2024/07/04 [09:05]

[한용성의 세계여행 (21)] -발트해의 숨은 진주 탈린 -

Eco-Times | 입력 : 2024/07/04 [09:05]

 

 

 

(첨탑의 도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전경)

 

 

내 친정인 W은행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점 식구들과 짜릿한 보드카 송별파티 후유증으로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지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에스토니아 탈린행 국제버스터미널로 갔다. 책에서 안내된 주소가 아니라 살짝 당황하였지만 露語 베테랑인 직원의 안내로 시간 내에 도착하여 아쉬운 이별을 하였다. 

 

이곳에서 탈린까지는 370km 정도로 에스토니아 국경도시 나르바(Narva)에서 쉬는 시간 포함해서 6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버스에 오르자마자 엊저녁 과한 송별식 후유증으로 떡실신해서 밤처럼 골아 떨어졌다.

 

버스가 서는 듯하여 실눈을 떠보니 심술궂게 생긴 러시아 이민국 아지매가 여권을 달라며 째린다. 지들 나라에서 구경하며 돈 쓰고 나가는 분의 짐검사를 샅샅이 하는 러시아와 짐 검사도 없이 입국허가를 하는 에스토니아와의 출입국 절차를 비교해보면 상이한 국가 체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이 공산국가인 베트남에서 10년을 근무한 내게 아직도 共産(communist)氏 하고는 친하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 국경도시 나르바

 

에스토니아 국경도시인 나르바에서 입국 신고를 하러 버스에서 잠시 내렸는데 앞에 보이는 오래된 성벽도 멋지지만 무엇보다 들숨에서 느끼는 자유의 공기가 달고 맛있다. 눈 감고 깜빡하는 사이에 도착한 탈린 국제버스터미널은 ‘국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버스 몇 대와 수다를 떨며 손님들을 기다리는 택시들로 한적하다. 

 

택시는 웨건형으로 여행객들의 짐 실기가 넉넉하고 요금 미터기도 있어 택시비로 실랑이할 걱정도 없지만 무엇보다 운전기사의 미소와 친절함이 으뜸이다. 예약한 아파트에 내렸는데 우리네와는 조금 다른 주상복합 건물의 입구를 찾지 못해 몇 바퀴 뺑뺑 돌다 결국은 주인 Ms Heudi가 내려와 우리를 안내하였는데 ‘한달 살기’를 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발트해 뷰를 갖은 널찍한 아파트이다. 

 

헬싱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좁은 호텔에 갇혀 있다 이렇게 넓고 깨끗한 아파트에서 첫번째 한 일이 밀린 빨래를 하는 것이라니 나의 배낭족 티는 집사람과 같이 다녀도 여전한 것 같다. 잠시 쉬었다 동네 마실 겸 슈퍼마켓을 찾아 정신없이 장을 보았는데 숙소에 돌아와서 펼쳐 놓으니 두 달 살기를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저녁은 모처럼 집밥으로 카레라이스와 베이컨, 치즈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며 모처럼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헬싱키행 크루즈선 

발트 3국 여행을 마치고 10일 후에는 이 유람선 타고 헬싱키 경유해서 한국으로 간다. 물론 한국 갈 때는 비행기로. . .

 

20일 동안의 여행에서 온 누적된 피로와 내 집 같은 편안함으로 느지막하게 깼다. 숙소에서도 보이는 탈린의 구도심은 발트해 건너 핀란드 헬싱키에서 크루즈를 이용해서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할 정도로 볼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게는 당일치기로는 보지 못할 여러 개의 숨은 보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촉이 온다. 

 

이미 시작된 백야로 늦은 일몰시간을 믿고 게으름을 떨며 숙소 지근 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남대문 격인 비루문(Viru Gate)에 도착했다. 비루문 안팎으로 신, 구 시가지가 갈리는데 그 옛날 이곳 성문지기가 알량한 끗발로 출입하는 백성한테 갑질을 하였을 거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신 시가지의 현대식 건물들을 뒤로 하고 비루문 안으로 들어서면 중세시대의 건물, 도로가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을 부른다. 이런 모습이 도시 전체를 UNESCO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비루문 

·구도시를 가르는 상징적인 문으로 우리네 사대문 중 남대문에 해당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중세시대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6개 대문 중 하나로 곧바로 가면 구도심인 구시청사에 이른다. 

 

           

  비루문 앞 꽃집

24시간 꽃집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이곳이 바로 거깁니다. 이곳의 꽃이 비루문 옆 사랑공원에서 연인들의 역사를 이루게 하는 주역이 아닐까 싶다. 

 

   

 

                                                     

 사랑공원 

19금 사랑공원의 조각상들. 아침이라 그런지 과감한 애정행각(?)에 보기 조차도 민망해서 도망치듯 나왔다. 

나이 칠십에 넘 순진한 거 아녀? 

 

 

꽃집 아가씨의 권유로 비루문 옆 사랑공원에 가보니 진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조각상들이 군데군데 전시되어 있어 이른 아침에 쳐다보기에는 꽤 민망스럽다. 이곳은 다양한 19금 조각작품의 전시로 미성년자 출입 제한을 하여야 할 듯. . .  어줍잖은 꼰대스러움이 빛을 발한다. 

 

            

 

 

중세 당시에는 비루문과 이어졌을 성벽길을 따라 걷다 헬레만 탑(Hellemann Tower)을 오르니 옛날 파수꾼들이 순찰하던 성벽(town wall)이 길게 늘어져 있고 여기서 본 교회의 첨탑들과 싼타 모자를 쓴 듯한 빨간 건물의 지붕들이 예쁜 그림엽서 같다. 동일한 색상의 지붕 자체는 村스럽지만 다양한 건물 위에 얹혀져 있으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이 훨씬 멋지다. 

 

        

  헬레만 탑 (Hellemann Tower) 에서  한용성 작가 

이 탑에 올라 200m에 이르는 성벽을 걸으며 중세 시대의 전쟁 때를 상상해보자. 이 3층탑은 

감옥, 무기고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성벽 산책, 미술 전시장으로 유료 개방을 하고 있다.

                                   

              헬레만 탑에서 본 탈린

성벽 길 지붕과 그 뒤로 탈린에서 제일 높은 첨탑을 가진 올라프 교회가 보인다. 

                            

      비둘기의 눈 (pigeons eyes)

대포를 쏘기 위한 구멍으로 본 탈린의 모습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성벽에는 대포를 쏘기 위하여 만든 구멍(Pigeon’s eyes)이 있는데 이 구멍을 통해 보는 구도심은 색다른 모습을 안겨준다.  성벽 길 여러 곳에 놓여진 벤치에는 자기 팀 번호를 가슴에 붙인 크루즈 여행하는 노인네들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가빴던 숨을 고르고 있다. 

 

탈린에서 가장 예쁜 골목으로 소문난 성벽 맞은 편의 카타리나 골목은 과거 길드가 모여져 무역의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국가 공인 장인의 상점들로 바뀌어 기념품을 사려는 많은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카타리나 골목

구도심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골목으로 유리제품, 퀼트, 보석 등 국가 공인 

장인들의 상점이 있고 골목 끝자락에는 성 카타리나 교회에 있던 

고대 비석들을 담장에 전시하고 있다.  

 

 

골목 끝자락 카타리나 성당 근처에는 성당에서 보관하던 여러 개의 비석이 도로 옆에 전시되어 있는데 비석의 재질이 석재라고 해도 소중한 유산인데 아무나 만지게 해도 되는지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해본다. 

 

탈린의 구도심은 툼페아(Toompea)언덕이 있는 고지대(Upper Town)와 구 시청을 중심으로 라에코야 광장(Raekoja Plats), 성 니콜라스 교회(St. Nicholas Church), 성령교회(Holy Spirit Church)등이 있는 저지대(Lower Town)로 나뉜다. 

 

              

     Long-leg Gate길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가는 길로 길거리 화가들이 그림을 팔고 있어 나도 이곳에서 득템 하였다.  

 

과거 귀족, 상류층이 사는 고지대를 가려면 경사가 완만하여 마차로 오를 수 있는 Long-leg Gate와 경사가 가팔라 오롯이 걸어서 오를 수 있는 Short-leg Gate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중세시대에는 이곳 두 개의 문이 귀족과 평민의 거주지역을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시청 첨탑을 가는 도로에 위치한 파스텔 톤의 다양한 중세 건물에 넋을 놓고 걷다 보면 종종 마부가 종소리를 내며 비키라는 신호를 주는데 ‘따각 따각’ 돌길을 두드리는 투박한 말발굽 소리가 정겹기도 하고 잠시 중세시대로 빠지기에 충분하다. 마차가 지나는 돌길, 잘 보존된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 사이로 보이는 여러 개의 교회 첨탑을 보면 역시 북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시대 마을임이 맞다.

 

    

 

           

    구 시청사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의 건물에 64m의 첨탑을 가진 구 시청사. 도로 좌우로 빡빡하게 들어선 중세시대의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순간이동으로 그 시대에 와 있는 것 같다. 왼쪽으로 오래된 에스토니아 전통음식점인 올데 한자 식당 (Olde Hansa)과 아몬드 파는 아가씨들이 보인다. 

 

“Where are you come from?” 

 

골목 사이로 보이는 舊 시청사 첨탑을 보며 생각없이 걷는 중에 중세 복장의 사내가 불쑥 나타나 말을 건다. 중세 분위기로 꾸민 탈린의 맛집 올데 한자(Olde Hansa)식당의 영업사원(삐끼의 고급 진 단어?)으로 식당 앞을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사진도 같이 찍으며 자기네 식당을 소개한다. 

 

여러 매체를 통해 유명한 식당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곰, 멧돼지, 순록 등 야생동물 고기가 주메뉴로 내 입맛과는 맞지 않아 애초부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곳이라 눈웃음으로 대신하고 지나쳤다. 

 

구 시청사 앞의 라에코야 광장(시청 광장)은 중세시대 때부터 문화의 중심지로 음악회, 축제, 시민토론회 등과 더불어 재판, 사형 집행, 검투사 행사 등 유쾌하지 못한 행사들이 동시에 일어났던 곳으로 예나 지금이나 늘 사람들로 붐빈다. 

 

    

   구 시청사 광장 (라에코야 광장 : Raekoja Plats)

탈린 문화의 중심지로 지금도 공연, 크리스마스 트리 및 마켓 등 많은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지만 중세시대에는 검투사 시합, 사형 집행과도 같은 어두운 행사들도 하였다고 한다. 

 

탈린이 점잖은 중세도시라고 해도 사람들이 붐비는 관광지에는 반드시 소매치기가 극성을 떠니 가슴 쪽으로 배낭을 매는 게 상책이다. 지금은 6월이라 광장이 심심하지만 12월에는 광장 중앙에 표시된 동판 위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크리스마스 마켓과 각종 공연 등으로 화려한 변신을 하는데 이 광장이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 곳으로 에스토니아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구 시청사와 성 니콜라스 교회 첨탑

구 시청사 첨탑에는 토마스 할배가 365일 발트해를 감시하며 탈린을 지키고 있다.  

 

구 시청사 첨탑 전망대를 오르려 하는데 앞선 크루즈 여행 단체팀 어르신들의 긴 줄로 바로 포기하고 노천카페에 앉아 시원한 맥주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크루즈 여행의 단체팀은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별 번호를 가슴에 붙이고 팀가이드의 인솔로 도시 전체로 흩어져 다니는데 작은 크루즈선도 최소한 500명 이상이니 이 분들이 하선하면 어느 도시던지 붐비기 마련이고 또 다른 특징은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높은 곳이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지 못해 팀에서 낙오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곳에도 몇몇 분은 전망대는 오를 생각도 못하고 근처에 앉아 가쁜 숨만 내쉬고 있다.   

 

“우리는 다리에 힘 있을 때 빚을 내서라도 열심히 다니자고.” 하였더니 집사람이 번개 같은 리액션으로 다음은 어디를 갈 거냐고 묻는다. 이제 여행의 맛을 점점 알아가는 집사람 앞에서는 여행 관련해서는 흰소리도 못할 것 같다.  

 

구 시청사 건너편의 성 니콜라스 교회(St. Nicholas Church)는 박물관으로도 사용되는데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개운치 않은 것을 봐서는 비싼 입장료에 비하여 별 볼일 없는 것 같아 외부 관람만 하고 long leg gate 길을 이용하여 전망대가 있는 고지대로 향한다. 

 

              

   성 니콜라스 교회 

어부와 선원들의 수호성인인 니콜라스를 기리기 위하여 지은 중세 고딕 양식의 교회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툼페아 언덕을 오르는 길에는 길거리 화가들이 여럿 있는데 나는 중년 여성 화가의 수채화를 샀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기념품으로 유일하게 사는 것은 길거리 화가의 작품으로 다소 어설픈 실력이지만 그 지역의 특징을 잘 표현한 그림들로 세계 곳곳에서 산 수십점이 방구석에 딩굴고 있지만 오늘도 또 샀다. 집사람도 오래 전에 포기한 나의 집착에 가까운 취미이다.

 

 

    

                                          

      알렉산데르 네프스키 대성당

1900년 러시아 제국 지배 시 건립된 러시아 정교회당으로 툼페아 언덕에 

위치하여 위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에는 의자가 없고 커다란 이콘들이 

있으나 세련되지 못하다. 최근까지도 철거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국회의사당

툼페아성 전면에 지어진 국회의사당 건물로 툼페아 언덕에 위치하여 있다. 

         

 

툼페아 언덕에 오르니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St. Alexander Nevsky Cathedral)과 툼페아성(Toompea Castle)의 국회의사당이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은 중세도시라는 탈린과는 어울리지도 않고 러시아 냄새가 팍팍 나는 세 개의 양파 돔을 머리에 이고 언덕 위에서 군림하는 듯한 모습이 이방인이 내 눈에도 거슬린다. 

 

동방 정교회가 어디나 그렇듯이 덩치 큰 외모에 비해 내부는 화려한 장식도 없이 여러 개의 이콘 그림만 있는 싱거운 모습인데 이곳 이콘은 더 엉성해 보인다. 게다가 찍을 것도 없고 찍고 싶지도 않은데 내부에서는 촬영금지라고 하니 여러 가지로 밉상이다. 

 

툼페아 언덕에는 귀족들이 살던 동네인 만큼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많은데 지금은 여러 나라 대사관저로 사용되고 있어 외교단지라고 불린다고 한다. 파티쿨리(Patikuli)전망대와 코투오차(Kohthotsa)전망대를 향해 가파른 언덕길을 힘들게 걷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성가곡이 은은하게 들려온다. 

 

러시아정교회처럼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작은 돔 성당(Cathedral of St. Mary the Virgin/ Dome Cathedral)에서 주일 미사를 드리면서 부르는 성가곡으로 가슴에 먹먹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집 떠나 주일을 한번도 지키지 못해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으려 성당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지금은 예배 중이라 입장이 곤란하다며 수녀님이 인자한 웃음으로 제재를 한다.

 

   

   파티쿨리 전망대에서 본 탈린.

멀리 올라프 교회의 첨탑이 보이고 그 뒤로 보이는 바다가 발트해이다. 

 

                       

 

     

 

오래된 성곽과 작은 공원으로 다소 어색한 분위기의 파티쿨리 전망대에 오르니 일요일을 맞아 마실 나온 많은 현지인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올라프 교회 첨탑과 발트해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앉아 있는데 노부부가 기웃거린다. 흔쾌히 자리 양보를 하니 사양하다 마지못해 앉으면서 이곳보다 탈린 시내를 잘 볼 수 있는 코투오차 전망대가 있다며 길을 알려주신다. 

 

감사 인사를 전하며 돌아서는데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두 분의 모습이 너무 다정스러워 저절로 카메라 셔터에 손이 올라간다. 그런데 공원 뒷배경으로는 어색한 오래된 성벽에 초등생으로 보이는 오누이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어 부모의 양해를 구해 사진을 찍었다. 전망대 올라 구도심의 엔틱한 풍경과 더불어 가족의 사랑, 부부의 다정함을 맛보니 기분이 완전 좋다. 

 

   

 

       

    코투오차 전망대

벽의 낙서를 정기적으로 페인트로 지우고 나면 어느새 누군가에 의해 그림이나 글로 낙서를 하는 것이 반복된다고 한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좋은 글이 쓰여져 있는 행운을 있었다. 

       

  코투오차 전망대에서 본 탈린

파티쿨리 전망대에서 본 것과 별 차이는 없지만 도심을 보기에는 코투오차 전망대가 좋아 보여서 이곳이 항상 붐빈다. 이곳 터줏대감 갈매기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골목을 잘못 찾아 조금 헤매다 도착한 코투오차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잠시 기다렸다. 왜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는 사람들 어깨 사이로 흘끗 보이는 탈린 시내를 보면서도 금세 알 수 있었다. 

 

탈린이 ‘첨탑의 도시’라는 말 답게 자기 만의 독특한 모양의 첨탑들과 주황색 지붕을 가진 개성 있는 건물들의 조화가 잘 보존된 중세도시라는 것 그래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것을 한번 더 느낄 수가 있었다. 벽에 쓰여진 ‘THE TIMES WE HAD’란 한 줄의 글이 머리에 팍 꽂힌다. 

 

 

   

  덴마크왕 정원의 현대판 기사 

                

    성탑

회랑을 걸으며 왕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데 그리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라 조금은 실망스럽다.

 

오를 때 힘들었던 만큼 내리막길은 힘 안들이고 천천히 걸었는데도 어느새 덴마크왕의 정원(Danish’s King Garden)에 도착하였다. ‘왕의 정원’이라는 이름에 비하여 정원 자체는 화려하지 않지만 여러 종류의 화초와 나무들 그리고 벤치 뒤로 보이는 성 니콜라스 교회 첨탑이 더해져 멋진 조망을 보여주고 있다. 

 

정원에는 처녀의 탑(Maiden’s Tower), 마르스탈 타워(Marstal Tower) 그리고 저지대 사는 서민들이 고지대를 방문하기 위하여 검문을 받던 숏 레그 게이트(Short leg Gate)가 있다. 이곳에는 우리네 전설의 고향과 같은 괴담의 주인공인 얼굴 없는 세 수도사의 동상이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 얼굴 없는 것을 확인하니 으스스한 분위기로 자다가 가위에 눌릴 것 같아 괜히 봤다 싶다.

 

 

 

얼굴 없는 세명의 수도사

사형 집행인(=망나니)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수도사가 되었으나 하나님께 귀의하지 못하고 귀신으로 떠돈다는 전설의 주인공들인데 실제 모자안에 얼굴없이 민민한 모습을 보면 으스스하다. 

 

성벽을 따라 신시가지로 걷다 보면 커다란 광장을 사이에 두고 유리 십자가 조형물과 노란색의 소담한 성요한 교회(St. John’s Church)가 마주하고 있고 근처에 넓은 공원에는 일요일을 맞아 많은 가족들이 잔디에 앉아 친목을 다지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곳은 러시아의 표도르 황제 기념비를 걷어내고 에스토니아 국가 독립을 위하여 희생한 독립투사를 기리는 자유광장(Freedom Square)으로 2009년 유리 블록을 쌓아 십자가 모양의 전승기념탑을 만들어 놓았다. 

 

     

  자유광장 

십자가 모양의 독립전쟁 전승기념탑은 23.5m의 높이로 체코에서 수입한 143개의 유리블럭을 붙여 만들었다. 광장 건너편으로 지는 햇살에 노란색의 성 요한 교회가 한층 아름다워 보인다.

 

13세기 덴마크를 시작으로 독일 기사단, 스웨덴, 러시아제국, 독일, 소련의 지배를 받다 1991년에야 비로서 독립을 하였으니 독립국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니 안스럽기까지 하다. 겨우 36년 식민지배를 받고도 지금까지도 친일 논쟁으로 국력을 소비하고 있는 우리네 모습이 안타깝다. 

 

이런 긴 시간 식민 지배를 받고도 자기네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들만의 높은 문화 수준을 간직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졸부 모습을 보이는 우리네와 오버랩이 되니 순간 마음이 착잡하다.

 

오후에는 뇌우를 동반한 소나기가 있다는 예보가 있는지라 서둘러 귀가해서 이른 저녁을 먹고 비 갠 후 탈린 항구를 거닐며 어제에 이어 여유로움을 즐겼는데 11시가 넘은 지금도 대낮이다. 

 

커튼 틈을 통하여 들어오는 강한 햇살에 눈을 뜬다. 날씨는 쾌청, 조석으로는 쌀쌀하지만 낮에는 한 여름의 온도가 될 것이다. 오늘은 발트해에서 적들로부터 탈린을 수호한 뚱뚱이 마가렛 포탑(Fat Margarets Tower)부터 일정을 시작한다. 

 

숙소에서 나와 건널목 근처로 걸어가니 좌우에서 오던 차들이 모두 서서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손으로 먼저 가라 하니 되려 우리 보고 건너라고 해서 미안한 마음에 뛰다시피 건넌다. 건너서 고맙다는 표시로 엄지척을 하니 차장 밖으로 자기도 엄지척으로 응수를 한다. 바다 건너 헬싱키에서도 이와 같은 멋진 경험을 여러 번 하였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 짓거리(?)를 하다 가는 곧바로 비명횡사다. 이런 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인데 과연 한국은 어디쯤에 있을까?

 

               

   The Brocken Lines

94년 ferry 참사로 숨진 852명을 추모하는 조형물로 구도심 북쪽 공원에 위치해 있다. 

 

 

누가 봐도 사연이 있을만한 공원 조형물은 94년 ferry 참사로 숨진 852명을 추모하는 "the brocken lines"이다. 공원 언덕 위, 아래로 끊겨 진 철물구조물의 모습에서 바다 속에 빠진 이들의 손을 잡지 못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얼마 전 우리도 세월호 침몰이라는 큰 아픔이 있어서인지 감회가 남다른데 더 이상 정쟁의 대상이 아닌 죽은 이를 위한 진심 어린 회한과 슬픔으로 기리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갖아본다. 

 

 

    

   뚱뚱이 마가렛 포탑

덴마크 마가렛 왕비의 지시로 탈린 구도심 주위의 성벽이 건설되었는데 포탄으로부터의 파괴를 막기 위해 지름 25m, 높이 20m 그리고 두께를 1.5m건설되어 내부가 공간이 넓어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문 당시 공사 중이라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올라프 교회

12세기 노르웨이 올라프 국왕에게 헌정된 교회로 첨탑까지의 높이가 

124m로 나선형 돌계단을 258개 오르면 탑 꼭대기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친근한 이름의 ‘뚱뚱이 마가렛 포탑’은 벽의 두께가 1.5m로 주위 포탑 친구들에 비해 많이 비만한데 13세기 초 덴마크 마가렛 여왕이 탈린을 지키라는 엄명에 따라 튼실하게 건설하였으며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방문 당시에는 내부 공사로 외관만 봤는데 역시 통통하다. 

 

푸근한 뚱뚱이 마가렛 성문을 지나니 어제 보아 눈에 익은 또 다른 중세도시가 나타난다. 지금은 호텔로 사용하고 있는 세 자매 빌딩이 어깨동무를 하며 이웃하여 있고 그 뒤로는 탈린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성 올라프 교회(St. Olav’s Church)가 보인다. 이 교회는 12세기 노르웨이 왕국의 지배시절에 노르웨이 올라프왕에게 헌정한 교회로  첨탑이 무려 159m로 탈린으로 입항하는 선박들에게 등대 역할을 했다. 

 

소련 지배 하에선 이 첨탑을 방송 송신탑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전망대로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128m 높이의 전망대를 오르려면 258개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어제 툼페아 언덕에서 본 것으로 퉁 치고 모른 척 지나친다. 

 

“왜 높은 데는 모두 오른다면서 다녀와요. 기다릴 테니. . . “하며 집사람이 은근 긁는데 무대응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어제 종일을 쏴 돌아다니다 지쳐 더 이상 오를 힘이 없다는 게 슬프다.

 

 

     

  KGB본부

소련 식민지배 시 에스토니아 독립 투사를 취조, 고문하고 감금하던 곳으로 

민가 한 복판에 있다. 이 건물이 에스토니아 국방성 건물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성령교회 

13세기 초에 세워진 루터교회로 1684년 크리스틴안 아커만이 

제작한 파란바탕의 금빛 시계는 지금도 잘 가고 있다. 

 

쓸쓸한 마음으로 시계로 유명한 성령교회(Holy Spirit Church)로 가는 중에 낯설지 않은 단어 ‘KGB’가 보인다. 설마 하며 지도를 펼치니 소련이 지배할 때 독립 투사 등 요주의 인물을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고 가두고 하였던 건물이다. 내부에는 취조실, 고문실, 감방 등이 있고 벽에는 그 당시사진이 걸려 있는데 일제하의 우리네와 같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민가가 있는 대로변의 멀쩡한 건물에서 그것도 성스러운 교회 바로 옆에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것을 생각하니 정말 몹쓸 로스께(일본어로 러시안인을 싸잡아 일컫는 말)놈들이다. 여기저기서 에스토니아 조상들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 도망치듯 나와 성령교회 근처 노천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로 찝찝한 기분을 날려버린다. 

 

       

              

   성령교회 내부

내부에는 바로크 양식의 목각과 성단이 있는데 1483년 제작된 성단은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중세 예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성령교회 아름다운 성단

조각한 인물들의 표정을 읽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교회 벽에 푸른 바탕의 아름다운 금빛 시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성령교회는 꼬마 첨탑을 가진 튀지 않는 순백색의 작은 루터교 교회이다. 중세 시대의 냄새가 물씬 나는 예쁜 골목이지만 대로와 동떨어진 뒷 골목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올라프 교회 전망대로 가는 길에 벽을 장식한 시계를 배경으로 인증샷이나 찍는 정도로 취급된다. 

 

나 또한 큰 기대없이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다니는 기독교와 꾸며진 모습은 다르지만 성스러운 성단과 그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목재 가구 그리고 2층 난간에 그려진 성화들이 환상적이다. 여기에 성인들이 그려진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햇살이 교회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잠시 몇 백 년 전 만들어졌을 의자에 앉아 묵상기도를 드린다. 나는 감히 “탈린에서 꼭 봐야 할 곳은 바로 성령교회이다”라고 권한다. 신세대 용어로 “강추”. . .

 

탈린灣이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서 내가 만든 소시지 볶음 안주에 와인을 마시며 지난 이틀 동안 보았던 탈린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담고 앞으로 열흘간의 발트 3국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탈린과 조우하기를 기대해본다. 

 

Let’s go . . .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Times 한용성 여행작가 / 글.촬영 

[前 금호타이어 사장. 現 케이프투자증권(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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