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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스페셜] -카자흐스탄 알마티, '사과의 조상' -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어로 '사과 할아버지'
-온갖 '사과의 조상'은 바로 알마티

Eco-Times | 기사입력 2024/08/12 [09:04]

[Eco 스페셜] -카자흐스탄 알마티, '사과의 조상' -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어로 '사과 할아버지'
-온갖 '사과의 조상'은 바로 알마티

Eco-Times | 입력 : 2024/08/12 [09:04]

 

 

▲ 알마티 거리의 사과 조형물

                                   

 

 

사과를 상징으로 삼는 도시라 하면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몇 있을 것이다. ‘빅 애플(Big Apple)’이라 불리는 뉴욕 을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유명한 사과 주산지를 꼽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가 사과의 도시라는 사실을, 그것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있는 온갖 사과의 조상이 이곳을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 람은 몇이나 될까?

 

필자 역시 지난 7월 방문한 알마티에 사과 조형물이 유독 많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 이를 전혀 알 지 못했다. 알마티와 사과의 관계는 도시 이름에서부터 찾을 수 있 다.

 

알마티의 ‘알마’가 바로 사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알마 티의 이름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1867~1921년까지는 ‘베르 니’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곳은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세운 투르키스탄 총독부 관할의 세미레첸 스크 지역의 중심지였다. 1921년 이곳의 이름이 알마아타로 바뀌었고, 1993년 카자흐스탄 정부가 카자흐어, 영어, 러시아어 표기 모두 ‘알마티’로 통일하기 전까지 알마아타는 오랫동안 이 도시의 이름이었다.

 

1929년부터 시작하여 카자흐스탄 북부 아스타나(당시 이름은 아크몰라)로 수도를 옮긴 1997년 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던 알마아타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널리 알려진 것은 ‘알마아타’에서 ‘알마’는 사과를, ‘아타’는 ‘할아버지’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전 세계 사과의 조상 격이 되는 사과가 이곳이 기원이라니, 어찌 보면‘사과 할아버지’라는 의미가 도시 이름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만, 카자흐어 측면에서 보자면 두 개의 카자흐 단어가 올바르지 않게 조합됐을 뿐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 알마티 인근 알라타우 산기슭의 '야생사과 군락지'

 

도시명의 어원에 대한 논쟁을 뒤로 하고, 사과가 알마티를 상징하는 것은 분명하다. 지구상 모든 사과의 조상으로 알려진 ‘시베르스 사과(Malus Sieversii)’라는 야생 사과가 알마티 인근의 알라타우 산기슭에서 자랐다고 알려져 있다.

 

1793 년 독일의 식물 수집가 요한 시베르스가 카자흐스탄의 유실 수 숲에서 발견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사과는 DNA 연구에 따라 세계 최초의 사과, 현재 우리가 먹는 사과 의 조상이라고 학계에 알려져 있다.

 

필자가 알마티에 머무는 동안 한국의 생태학자들도 이를 연구하러 왔다는 소식을 현지 지인을 통해 들었으니 이것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만은 아 닐 것이다. 사과가 이곳에서 세계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 이야기는 BBC 기자이자 음식 저널리스트인 댄 살라디노의 '사라져 가는 음식들'을 참고하면 된다.

 

알마티가 사과로 유명한 것은 시베르스 사과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서 재배했던 ‘아포르트’라는 사과 품종이 소련 전역에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품종은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보로네시에서 이주한 예고르 레드코라는 사람이 이곳으로 여러 묘목을 가져왔는데, 그중 한 묘목이 카자흐스탄 특유의 기후와 잘 맞으면서 크기는 어린아이 머리만 하고 향긋 하고 맛있는 사과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사과는 해발 900~1,200m 사이의 특정 경사면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그 아래서 자라면 사과가 너무 익어버리고, 더 높은 곳에서는 당도가 떨어져 버려 맛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아포르트 사과는 러시아 제국의 대도시에도 서서히 알려지게 됐고, 소련 시기에는 집단화 정책과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철도가 건설되면서 소련 곳곳에도 운송됐다.

 

▲ 사과축제

 

 

 

소련을 넘어, 독일, 프랑 스, 헝가리 등 국제전시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고 하니 당시 아포트르 사과의 명성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런 아포르트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 한 가지가 존재한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1978년 세계보건기구(WHO) 회의 참석차 알마아타 에 왔을 때 기자들이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카자흐스탄 호텔 에서 묵는 게 어땠는지 질문을 퍼부었다고 한다.

 

케네디 상원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않은 대신 호텔방 에 있던 사과만큼 향긋하고 맛있는 사과는 어디에서도 맛본 적이 없다고 극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토록 유명했던 아포트르 사과는 한때 카자흐스탄에서 찾기 힘들 정도로 멸종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의자부심이었던 아포트르 사과가 마치 ‘전설의 사과’처럼 되어 버린 것은 카자흐스탄, 더 나아가 소련의 역사와도 관련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기부터 소련 붕괴를 거쳐 일어난 경제 체제의 급격한 변화로 거대한 사과 국영 농장들은 사라지게 됐고, 제대로 된 보조금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묘목 번식이나 교체 등이 중단됐다. 소와 양 사육, 그리고 난방을 위해 이곳의 많은 숲이 벌목되면서 야생사과나무들도 사라지게 되었고 시베르스 사과 역시 위기에 처하게 됐다.

 

▲ 알마티 번화가 거리모습

 

정치·경제적 혼란기를 지나, 2000년대 들어 카자흐스탄 정부는 알마티 사과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아포르트 사과를 되살리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카자흐스탄 교육과학부가 연구 공모를 열기도 했고, 토카예프 현 대통령 역시 이 문제를 지적했다. 국가적 관심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2009년 4월에는 카자흐스탄 국립은행이 알마티 아포르트 사과에 헌정하는 500텡게 기념 은화를 발행하기도했다.

 

성경 속 이브를 유혹했던 그 사과의 발상지가 카자흐스탄이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카자흐스탄 사과의 기원과 역사를 다룬 ‘사과나무 숲’, ‘사과’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 졌다. 국가적 관심뿐만 아니라, 아포르트 사과를 되살리자는 민간 차원의 캠페인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시장에서 아포르트 사과를 쉽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전설적인 그 아프로트 사과가 맞는지는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알마티에서 사과가 갖는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매년 9월 셋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도시의 날’ 연례행사의 핵심은 ‘알마 페스트(Alma Fest)’, 즉, 사과 축제이다. 각지에서 온 다 양한 사과를 사고팔고 사과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사과는 정물화의 흔한 소재이기는 하지만, 카자흐스탄 화가들 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술적 영감이자, 알마티 시민 들이 여가를 보내는 일상 공간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곳곳 을 장식하는 중요한 도시 상징이다.

 

알마티의 자매도시 중 한 곳이 우리나라 사과 주산지 중 하나인 대구인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김혜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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