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단독]신미양요 당시 미국원정대 남양부(南陽府)로 편지를 보내다.

조선에 온 목적 처음으로 밝혀.

Eco-Times | 기사입력 2023/05/11 [15:10]

[단독]신미양요 당시 미국원정대 남양부(南陽府)로 편지를 보내다.

조선에 온 목적 처음으로 밝혀.

Eco-Times | 입력 : 2023/05/11 [15:10]

 

 

▲ 제부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 Eco-Times

 

▲ 미국의 조선 원정대 군함  © Eco-Times

 

 

1871년 4월9일(양력 5월29일) 경기감사 박영보는 남양부사 신철구. 화량첨사와 함께 다시 이양선이 정박하고 있는 남양만 앞바다 (입파도.풍도 부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어제 (4월8일) 머리털이 노랗고 긴 턱수염에 코가 큰 이양선 서양사람들과의 첫 접촉에서 알아낸 것이 없으니 궁금증만 더했다. 말도 안통하고 간신히 손바닥 그림이나 손짓으로 대강 파악한걸로는 조정에 보고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관리들은 이양선으로 가던 도중 바다가 사나워서 포기하고 제부도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들이 섬에 머무르고 있던 중 이양선의 종선 3척이 높은 파도를 뚫고 제부도에 접안해서 서양사람 3명이 상륙했다는 보고를 하고 있다.

 

다음은 고종실록 8권 고종8년 4월9일 (음력) 박영보의 장계(壯啓)내용이다

 

 

‘오늘 사시(巳時)에 조수(潮水)를 이용하여 남양부사(南陽府使). 화량 첨사(花梁僉使)와  같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으나, 양선(洋船)이 있는 곳까지 채 가기도 전에 어제처럼 사나운 바람이 불어 할 수 없이 돌아와 정박하였습니다.

 

양선의 종선(從船) 3척(隻)이 바람을 무릅쓰고 와서 정박하므로 급히 가서 보니 서양사람 3명(名)이 뛰어내렸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얼굴 생김새나 말씨가 틀림없이 우리나라 사람(중국인 통역으로 추정)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며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하고 글로 써서 물었더니, 그들은 "글을 모르므로 글로 대답할 수 없다."라고 하고는 한 통의 편지를 주고 이어, "혹 중국말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라고 물으므로 없다고 대답하니, 그들은, "장사하러 여기에 왔으니 사람을 죽이는 사단은 전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배는 몇 척이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5척이다."라고 말하였으며, 또, "어느 날에 돌아가느냐?"고 물으니, 그는, "며칠 내에 북쪽으로 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돼지, 닭, 계란, 물고기를 살 수 있느냐?"라고 하기에,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또다시 물으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뿌리치고 배를 돌려 가버렸습니다.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잠시 살펴보니, 3척의 배에 있는 서양사람들은 47명이었습니다.

저 무리들이 바닷가를 거침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걱정되어 방어대책에 대하여 특별히 신칙(단단히 타일러 경계함)하고, 그들이 보낸 편지 한 통을 베껴서 올려 보냅니다.’라고 아뢰었다. 

 다음은 미국원정대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이다

{ 회답을 올립니다. 어제 대면에서 가져온 편지를 받아보니 우리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여기에 온 것은 무슨일 때문이냐 고 하였고 여기로 온 경위를 알아 보았으면 좋겠다 등의 내용이었는데 이미 이 문제들은 우리 흠차대인(欽差大人.로우 Low /주청 미국공사.원정대의 조선파견 전권공사) 제독대인 ( 로저스 /미국 아시아함대 사령관 )에게 편지로 알렸고 회답을 해주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조선원정 대임을 부여받은 '로우'와 '로저스'에게 허락을 받고 이 편지를 전달한다는 얘기다. 이어서 자신들의 정체와 이곳에 온 목적을 밝히고 있다.

 

▲ 작전회의 중인 로저스 (右에서 두번째)  © Eco-Times



 이 배는 대아메리카합중국(大亞美理駕合衆國) 즉, 대미국(大美國)의 배이며 여기에 온 것은  우리 흠차대인(로우)이 조선의 높은 관리와 협상할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약을 체결하려면 아직도 날짜가 필요하므로 우리 배는 이 바다 어느 한 지역에서 정박하고 있으면서 조약이 체결되기를 기다렸다가 돌아가겠습니다. 배에 머물러 있는 두 대인은 다 잘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조정은 대책을 논의하고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통역관을 파견하기로 했다.

 

▲ 강화도 앞바다에 상륙한  미국원정대 군인들 . (지명미상) 원정대는 조선원정의 실상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이탈리아人 펠리체 베아토를 종군 사진기자로 대동했다. © Eco-Times


   미국원정대는 1871년 3월27일(양력 5월16일) 일본의 나가사키를 출발해 4월3일(양력 5월23일) 남양만 앞바다에 도착 입파도와 풍도 부근해역에 머무르며 6~7일 동안 4척의 작은 함정으로 연흥도 작약도 부근 측량을 끝내고 지형을 파악한  후 4월10일(양력 6월1일)경 남양만 앞바다를 출발해 강화해협을 향해 올라갔다.

남양만 앞바다에 머무는 동안 원정대는  4월 8일.9일(양력 5월28. 29일) 2일 동안 화성시 서신면 제부도에서 조선관리들과 접촉해 편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처음으로 밝혔다. 화성시 제부도는 152년 전에 한국과 미국이 조우한 역사적 장소인 것이다.

 

Eco-Times 박래양 기자lypark9732@naver.com

               (출처 : 고종실록8권. 4월9일 자. 사진제공: 금웅명 본지 고문)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