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화성의 역사(1)] - 남양(南陽)편-- 첫번째 기록은 태조2년, 남양백(南陽伯)으로 홍영통((洪永通) 임명
화성 지역은 고대 이래 한반도의 서쪽에서 남북을 잇고, 남양만을 통해 중국 산둥반도로 오갈 수 있는 교통의 결절점이었다.
또 고려·조선 시대에는 남도 지방과 수도인 개경·한양을 잇는 조운로상의 길목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도와 인접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외적으로부터 수도를 지키는 방어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삼국과 남북국 시대에는 화성 지역에 당항성을 축조하거나 군진을 설치하여 교역의 안정을 도모하였고, 고려·조선 시대에도 군사와 행정을 아우르는 도호부와 진을 설치하였다.
특히 조선에서는 지금의 남양읍 서북쪽 송산면 일대에 화량진을, 남양읍 서남쪽 서신면 일대에 영종포(現, 서신면 용두리 산165번지 왕모대)를 설치하였는데 경기도 지역 수군의 주요 거점이었다.
아래 사료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남양(南陽)> 검색 첫 내용이다.
▪ 태조실록
1. 태조실록 4권, 태조 2년 9월 13일 을묘 1번째 기사 1393년 명 홍무(洪武) 26년
안렴사를 폐지하고 관찰출척사를 회복시키다. 한상질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안렴사(按廉使)를 폐지하고 관찰출척사(觀察黜陟使)를 회복시켜, 양광도는 한상질(韓尙質)을, 경상도는 민개(閔開)를, 전라도는 안경공(安景恭)을, 서해도(西海道)는 유원정(柳爰廷)을, 교주 · 강릉도(交州江陵道)는 유양(柳亮)을, 경기좌도(京畿左道)는 하윤(河崙)을, 우도(右道)는 이빈(李彬)을 관찰출척사(觀察黜陟使)로 삼고,
또 홍영통(洪永通)을 남양백(南陽伯)으로,
안종원(安宗源)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로, 권중화(權仲和)를 영삼사사(領三司事)로,
정도전을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유만수(柳蔓殊)와 성석린(成石璘)을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로, 남은(南誾)을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남재(南在)를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이직(李稷)을 중추원학사(中樞院學士)로, 이근(李懃)을 대사헌(大司憲)으로, 한상경(韓尙敬)을 도승지(都承旨)로 삼았다.
(*남양백 : 옛 봉건제도 5등 작위 중 세번째 등급이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7장 B면 【국편영인본】 1책 49면 1393년(태조2) 조선건국 2년, 조선을 8도로 행정개편하는 초기 단계이다. 경기좌도(京畿左道)에 남양군(南陽郡)이 속하였다. 개국공신 홍영통(洪永通)을 남양백(南陽伯)에 봉한다는 내용과 고려조정에서 남양군수를 지낸바 있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이룬 조선개국 1등 공신으로 조선 초기 재정을 총괄하던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임명하는 내용이다.
['건강한 환경과 아름다운 문화'를 추구하는 생태환경뉴스 Eco-Times는 화성시 역사의 뿌리인 남양만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사료를 발굴 정리하고 연재해 화성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화성시민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詩人이면서 화성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대진 소장이 연재를 이어갈 계획이다.]
* 2회째 부터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으로 본격적으로 연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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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Times 박대진 전문위원 (시인. 화성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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