甘달 감 呑삼킬 탄 苦쓸 고 吐토할 토
감탄고토(甘呑苦吐)는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전혀 다른 상반된 경우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
최진희가 부른 ‘사랑아’ (작사·곡 김진룡)는 사랑의 감탄고토 상황을 극명하게 표출한다.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쓰면 뱉고/달면 삼키는/사랑인가요/하도 많은 사랑 중에/왜 하필/나인가요/’.
여기서 화자는 감탄고토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즉 자신의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후에 이를 하소연한다. 주지하다시피 사랑은 항상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죽자 살자 사랑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 갑자기 별리의 피뢰침을 맞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자는 연인 간에 오가는 수많은 사랑 중에 ‘왜 하필’ 자신이 감탄고토의 희생양이 되는지를 되묻는다. 특히 헤어지자는 연인의 짧은 말 한마디인 ‘고마웠다’라는 표현에 화자는 억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끝내/나를 울리겠다면/울어 주겠소/’.
화자는 현재 연인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과거에 스쳐지나간 연인들과의 사랑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문득 상념에 젖는다. ‘사랑할만 하면 정 줄만 하면 모두 다’ 자신의 곁을 떠나간 연인들과의 안타까운 추억에 잠긴다. 그에겐 너무나 야속하고 무정했던 연인들이었다. 화자에게 ‘모질게’ 대한 아프고 쓰라린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이제 화자는 연인을 체념하고 헤어져야 할 지금의 현실을 수용하기로 결정한다. 따라서 어차피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오히려 아주 ‘멀리’ 연인이 자신의 곁을 떠나갈 것을 요구한다:
‘가라 갈테면 가거라 멀리 가거라 사랑아 오라 이별아 와 봐라 내 너를 반겨주마’.
주현미와 김준규가 혼성 듀오로 부른 ‘청춘 고백’ (작사·손석우 작곡·박시춘)에서도 사랑의 감탄고토 정서가 확연히 드러난다.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구성된 노랫말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헤어지면 그리웁고/만나보면 시들하고/몹쓸 건 이내 심사/믿는다 믿어라/변치말자/누가 먼저 말했던가/’.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연인은 상호 신뢰를 각자 마음속에 구축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믿음이 부재하면 둘 간의 사랑은 지속되기 어렵다. 사모하는 연인이 만나면 행복하고 헤어지면 그리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다시 만날 때 반갑지 않고 ‘시들’하다면 이는 연인의 마음에 사랑이 충족되지 않아 내키지 않는 시큰둥한 감정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곡명 ‘청춘 고백’의 화자의 상황도 이와 동일한 경우이다. 연인과의 사랑이 한껏 무르익을 때에는 ‘변치 말자’며 상대방만 ‘믿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화자는 자신의 마음이 악독하고 고약하다며 ‘몹쓸 건 이내 심사’라고 언급한다.
즉 지난날 저질렀던 ‘죄 많은 내 청춘’의 심경을 고백한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연인에 대한 화자의 참회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가사 후반부로 갈수록 이 같은 화자의 참회 감정은 그 깊이를 더해간다:
‘입에 달면 삼켜두고/입에 쓰면 뱉어내는/모를 건 이내 마음/봉오리 꺾어서 울려 놓고/본체만체 왜 했던가/’.
화자의 연인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지부작족(知斧斫足)의 안타까운 신세로 전락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즉 감탄고토의 대상물이 된 희생물로 비유된다. 결국 화자는 연인의 ‘봉오리’를 꺾어 상대방을 울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이를 ‘본체만체’ 망각의 강으로 그냥 흘려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일말의 죄의식이 남아 있다. 따라서 ‘아 생각하면 생각사로’ 죄가 많은 청춘을 떠올리며 참회의 고백을 늘어놓는다.
달면 삼켜버리고 쓰면 뱉어버리는 풍조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연인 간의 사랑도 이러한 경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선남선녀의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끝없는 욕망을 향한 질주를 더욱더 부추기고 있다. 더 나아가 정신이 흐려져 혼침(昏沈)을 일으키는 애욕과 망상과 번뇌로 인해 진정한 사랑이 뒤틀려 변하기가 다반사이다.
이러한 왜곡된 사랑의 이면에는 감탄고토의 고질적 병폐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종자(種子)로 남아 똬리를 틀고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Eco-Times 고재경 전문위원 (배화여대 명예교수/영문학 박사/작사가)
<저작권자 ⓒ 생태환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Eco 에세이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