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랄해의 비극 무이낙을 가다-사막으로 변해 버린 아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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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쿠스가 있는 카라칼파크스탄 자치공화국은 우즈베키스탄 북서부 아랄해 남단에 자리 잡고 있으며 크기가 우즈베키 스탄 전체 면적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넓은 곳이 지만 사막 지역에 둘러싸여 있어 인구는 전체의 5% 남짓 정 도로 인구 밀도가 희박한 편이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현재 고려인이 5,000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왠지 친근함이 느 껴지기 시작했다. 누쿠스는 인구 32만 명의 도시로 우즈베키 스탄에서는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이곳으 로 가려면 17시간 이상 걸리는 야간열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
사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사막으로 변해버 린 아랄해의 과거 번창했던 항구 도시인 무이낙이었기에 일단 왕복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호텔 조식도 거른 채 공항으로 향했다.
타슈켄트 공항을 이륙해 30분 정도 지나자 황량한 사막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1시간 30분 후에 누쿠스 공항에 도착했다. 예약해 놓은 숙소에서 무료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건만 아무리 찾아도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숙소에 연락하니 그냥 택시를 타고 오란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절대 택시 운전사와 흥정해서 타지 말고 ‘얀덱스 택시’ 앱을 이용해야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택시 요금이 한국 돈 1,000원 정도이니 아직은 물가가 정말 저렴한 편이다). 누쿠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잘 정돈된 도로와 신축 건물들이 어우러져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한적하고 평화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무이낙은 이곳 누쿠스에서도 차로 3시간 30분 정도 가야 한다. 물론 저렴한 대중교통도 있지만, 출발·도착, 배차 시간 이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해서 현지 여행사에 투어 상품을 예약해 놓았다.
호텔에 도착해보니 그 곳에서 연락이 와 있었다. 예약 당시 다른 신청자가 없어 1인 출발 80달러(운전기사+차량+점심)였으나 추가로 1명이 예약을 했으니 45달러만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호텔 체크인을 할 수 없어 가방만 맡겨두고 거리로 나섰다.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숙소 근처의 음식점을 찾아보 는데 마침 국시 하우스(Kuksi House)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허름한 곳이었지만, 점심시간 한 참 전인데도 불구하고 테이블이 현지인들로 꽉 차 있었다.
벽 면 한쪽에 한글 자모음 조각이 장식된 걸 보니 아마도 고려 인이 운영하는 곳 같았다. 맛깔스럽게 올려진 고명과는 달리 육수의 맛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잠시나마 이곳에서 지금까 지 살아왔을 그들의 삶을 돌이켜 보았다.
누쿠스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박물관이 있다고 하여 발 걸음을 재촉했다. 누쿠스 미술 박물관의 정식 명칭은 설립자 의 이름을 딴 이고리 사비츠키 미술 박물관이다.
이곳은 우즈 베키스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 작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고 하여 많은 미술 애호가가 찾는 곳이라고 한다. 마침, 찾아간 날 이 휴무일인 월요일이어서 주변만 간단히 산책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8월 초 이곳의 날씨는 40도를 웃돌았고 한낮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내일 가는 무이낙은 사막지대라고 하는데 벌써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무이낙 투어 당일 아침 운전사가 약속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운전사는 러시아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살라마트(Salamat)로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차량은 쉐보레 세단이었는데 본인 차량으로 여행사에서 일감을 얻는다고 한다. 호텔에서 출발한 차량은 30분 후 고고학 유적지이자 묘지인 미즈다칸(Mizdakhan)에 정차하여 잠시 둘러볼 시간을 줬다.
투어에 참가한 다른 여행객은 젊은 미국인 친구였는데 여행 내내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항상 나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운전사와 나는 “저 미국인 친구는 아마 블로거이거나 유튜버일 거야”라고 확신했으나 의외로 금융업에 종사하는 일반 직장인이라고 해서 서로 멋졌게 웃고 말았다.
무이낙으로 가는 도로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소련 시대 산물이다. 아스팔트는 모두 깨져 있어 차라리 비포장도로였으면 더 나았을 법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래도 이곳 출신의 베테랑 운전사답게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3시간을 달려 무이낙에 도착했다.
무이낙에 도착하기 전 차창 밖으로 펼쳐진 사막의 모습이 예전에는 바다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랄해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걸쳐 있는 내해(內海)로 한때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면적의 2/3 크기였으나 지금은 10%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남아 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 에 고립된 내륙호라서 다른 곳보다 물의 증발 속도가 빠르긴 했지만, 톈산산맥 고원지대에서 발원하는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줄기만으로도 증발량을 보충 해 주며 평형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1960년경부터 소련 정부 가 두 강의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면서, 또 주변 지역의 목초지나 경작지를 이 두 강과 그 지류의 물을 이용한 관개 농지로 전환하면서 1980년대에는 두 개의 강물이 호수에 도달 하기 전에 말라버렸다. 이에 따라 주변 기후가 변하면서 아랄해의 비극은 시작됐다.
아랄해가 염호였던 탓에 물이 말라 가면서 소금 사막으로 변해버렸고 강 유역의 숲들은 황폐해졌으며 그곳에 서식하던 각종 동식물 역시 사라졌다. 이제는 아랄해가 아닌 ‘아랄쿰 사막’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특히 당시 가장 번성했던 항구 도시 무이낙의 흔적은 박물관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환경운동가, 사진작가, 여행 유튜버 등)은 모두 각자의 목적에 따라 ‘배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야외 박물관에 놓인 녹슨 어선들을 보기 위 해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40도를 웃도는 한낮의 땡볕 아래서 둘러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운전사도 이를 아는 듯 최적의 코스를 안내해 준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환경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눈앞에서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한 번쯤은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은 아랄해 복구를 위해 1992년부터 ‘아랄해 수역 계획 프로젝트’ 를 진행 중이며 그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무이낙은 황폐하고 암울한 도시일 거라 상상한 내 생각과는 달리 매우 활기차고 건강한 도시처럼 느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생태환경뉴스 Eco-Times / 홈페이지: eenews.kr
-서병용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