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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탈린: 번영과 침략, 냉전의 역사가 층층이 쌓인 도시

Eco-Times | 기사입력 2024/03/11 [09:54]

에스토니아 탈린: 번영과 침략, 냉전의 역사가 층층이 쌓인 도시

Eco-Times | 입력 : 2024/03/11 [09:54]

 

 

▲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발트해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스웨덴과 핀란드, 독일과 폴란드 등을 끼고 있는 바다이다. 이들 유럽 국가 외에 에스 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러시아도 발트해에 인접해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이른바 ‘발트 3국’이라고 하면 발트 해에 접한 세 개의 소국, 즉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 니아를 가리킨다.

 

이들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고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항구에서 나오면 바로 만나는 나라는 에스토니 아이고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이자 수도는 탈린 (Tallinn)이다.

 

탈린은 중세 시대부터 발트해를 활용한 상공업 과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고, 그 결과로 남은 현재의 탈린 구 시가지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덴마크, 독일, 스웨덴과 같은 여러 유럽 국가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구소련에 편입되는 역 사까지 경험했기에 수도인 탈린에는 에스토니아가 받은 지배 와 점령의 역사와 그 흔적들이 지층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탈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배경의 큰 부분 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했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독일에서 유래한 튜턴 기사단의 지배 와 한자동맹으로 번영하던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구시가지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성벽과 상공업 연합인 길 드와 관련된 건축물들은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중세의 면모를 진하게 보여준다. 돌을 촘촘히 박아 놓은 길바닥을 지 나가는 차량이 내는 마찰음은 오래전 수레와 마차가 지나며 또각거리던 소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여러 분야 길드의 수공업 제품들이 해당 건물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이처럼 평화로운 중세도시의 모습은 한가로운 관광지로서 도시의 역할에서 큰 몫을 한다.

 

                                  

 

이렇게 탈린이 발트해를 통해 상공업과 무역이 번성했다는 점은 그만큼 많은 외부의 적이 이익을 찾아 침략과 지배를 원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탈린은 중세 이후 천년 가까이 인접 국가들의 침략에 시달린 아픈 역사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튜턴 기사단과 덴마크, 스웨덴 등의 침략자들 은 저마다 승리의 상징물을 건설했고 이들 건축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도시의 일부가 되었 다.

 

발트 3국 중에서 특히 에스토니아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 사회에서 노르딕 정서와 색채를 상대적으로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점은 에스토니아 민족이 오랜 시간 이들과 교류하고 지배를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탈린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제 정 러시아 시기의 건축물, 독일 나치와 구소련 시기의 역사 시설들도 침략과 강압의 아픔을 보여준다. 특히 이러한 아픔 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시내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과거 KGB 탈린 사무소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 아간 지하구치소와 성벽 바로 너머의 항구로 가는 길에 을씨 년스럽게 자리한 감옥 건물이다.

 

구시가지 바깥에 널려 있는 구소련 시기의 대규모 극장이나 공공주택 건물들도 그러하다. 어쩌면 탈린은 솅겐조약으로 자유롭게 유럽 지역을 방문할 수 있는 이들에게 구소련의 어두웠던 모습을 가장 빠르고 편 리하게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일지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부터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얻은 1990년대 소련 체제 붕괴 직전까지 에스토니아라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었다. 특히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냉전이 지속되던 시기에는 많은 에스토니아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동시베리아까지 강제 유배형을 받아 떠나며 이별을 경험했다.

 

탈린에는 당시의 흔적을 기억하고자 많은 상징물이 조성됐으며, 이러한 아픔의 기억을 후대에도 알리고 연구하며 교육하고자 하는 박물관과 기관들이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침략의 역사 속에서도 가장 최근에 경험했고 그래서 상처도 더욱 큰 당시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편 탈린에 있는 장소나 상징물들은 아픈 기억들과 함께 현재의 에스토니아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함께 모여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는데,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노래를 부르다가 아픈 역사와 강압에 항의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장소가 15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에스토니아 합창 축제인 ‘라울루피두’ 현장이다. 탈린 시가지 중심부에서 조금 외부로 나와야 만날 수 있는 이곳은 수만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모여 노래하며 소련 시절 한때 압제에 항거하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축제는 이른바 ‘노래하는 혁명’이라고 불렸던 에스토니아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한 이유로 축제가 진행되는 이곳에는 과거의 기억을 남기고자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다.

  

▲ '라울루피드' 합창대회 (자료)

 

                                  

 

합창대회가 열리는 행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에스토니아를 침략하고 지배한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가 머 물렀다는 저택과 궁전을 볼 수 있으며, 바로 앞에는 현대식 시 설을 자랑하는 에스토니아 국립미술관이 있다.

 

독립을 얻은 시 기가 오래되지 않은 만큼 국립미술관 역시 2000년대 들어서야 만들어졌는데, 이곳에는 오래전의 에스토니아 미술품들과 실험 정신이 가득한 현대 작품까지 한자리에 모아두었다.

 

                               

또 탈린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곽 바로 너머에는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에스토니아 인구만큼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유서 깊은 국립 극장이 있다.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음악가들이 많았다는 점은 모순되지만, 유럽과 노르딕 정서에 러시아적 색채가 복잡하게 혼합된 이 도 시의 기구한 운명을 자양분으로 삼은 것 같다.

 

이 오페라 극장 은 성벽 안쪽에 소련 시절에 건설한 영화관이 있다는 점과 대조적인데, 이 영화관 건물은 여전히 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에서 독립하고 난 후 경제통합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연합(EU)과 북미와 유럽의 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며 빠르게 ‘탈러시아’와 동시에 ‘친유럽화’ 정책을 추진했다.

 

수도인 탈린 시내에서는 관공서와 교육기관 등에서 EU 상징과 회원국 깃발이 자주 눈에 들어오고, EU와 NATO 관련 기관과 사무소들이 많다. 또한 새롭게 들어선 건물과 리모델링으로 변모한 건축물에는 EU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뤄진 것임을 나타내는 표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소련에서 독립한 직후부터 디지털 사회를 추진했던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NATO 사이버 방위센터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탈린 시내의 관광지와 사람들 모습에서도 지난 아픈 기억과 함께 그러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발트해를 바라보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중세의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모습 뒤에 슬픈 침략과 지배의 역사 그리고 그에 따른 아픈 기억이 혼재하는 동시에 유럽 최동단에서 러시아와 마주하는 EU 회원국의 수도이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항구에서 발트해로 연결되어 유럽으로 통하는 지리적 상황과 최근의 유럽과 러시아 관계를 고려하면, 그리고 유럽과 러시아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서로 침략과 전쟁을 반복한 상대였고 그 사이에 이 작은 국가가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탈린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소련에서 독립한 에스토니아 정부가 빠르게 유럽화 를 추구하고 NATO에 가입하면서도 디지털 사회를 꿈꾸며 수 많은 혁신기업을 유치하려고 하는 정책도 상공업과 무역으로 번영하던 과거의 전통 위에서 자본주의를 통하여 ‘새로운 의 미의 안전’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의 한 모습이다.

 

탈린 사람들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바로 세우고 기억하며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부단한 모습은 동북아시아의 한국과 마찬가지 로 강대국의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한 어려운 노력이다.

 

* 지난 1월 말 2월 초 진행된 한국외국어대학교 EU연구소 발트 3국 연구사업단의 에스토니아 현지 조사 성과를 소개하는 칼럼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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